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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Ishmael."
소설 모비딕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왜 아브라함과 그 정처의 아들인 이삭이 아니고 몸종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이라 불러 달라고 했을까?
이삭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으로 일컬어지고 이스마엘은 아랍 민족의 조상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쿠란에서는 신의 은총을 받은 적자는 이삭이 아니라 맏아들인 이스마엘로 얘기한다.
그들 사이의 자존심 대결인 것도 같다.
어쨌든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이 큰 서구 문화에서는 이스마엘은 어딘가 정통적인 느낌은 아니다.
소설에서 이스마엘은 에이허브 선장이 이끄는 피쿼드호에 선원이자 거대한 고래, 모비딕을 잡는 여정을 그린 화자로 등장한다.
예전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화자인 이스마엘에게 이끌렸다.
모비딕으로 인해 다리 하나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에이허브 선장의 열정, 또는 광기 어린 집념과 행동은 내게 그리 다가 오지 않았다.
현실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하며 에이허브 선장을 비판하는 항해사 스타벅스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다만 최후의 순간에 에이허브 선장의 편에 서 피쿼드 호와 최후를 같이 하는 그를 이해할 것 같으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스마엘은 이 모든 것을 다소 한발짝 떨어져 지켜 보면 얘기를 전했다.
열정에 파 묻히거나, 어떤 대상에 차츰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내 성격 탓으로 이스마엘이라는 화자에 더 끌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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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ale"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는 소설 모비딕이 중요한 모티브로 쓰인다.
찰리는 600 파운드나 되는 고도 비만으로 10여년 전 동성애자인 그는 남자 친구와 살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나왔다.
그런데 그 남자 친구마저 자살한 이후 세상과 단절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작문을 지도하는 강사의 일을 하고 있다.
고도 비만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노트북의 카메라가 망가졌다고 둘러대어 숨길 수 있었다.
그러다 점점 건강이 악화되고 그는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8살 이후 보지 않았던 딸 엘리를 거의 10년 만에 만나 그녀가 어린 딸을 버린 자신을 깊이 원망하는 것을 알았다.
엘리가 자신으로 인해 반항적으로 자랐고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고 퇴학 당할 위기라는 것에 자책을 하게 되었다.
딸을 돕고자 작문 과제를 도와 주겠다고 하나 엘리는 거부한다.
찰리는 이에 자신을 만나 주면 모든 재산을 엘리에게 주겠다고 한다.
이후 줄거리는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가족을 버린 남자와 그 반항적인 딸에 대한 관계가 기둥 줄거리이고
주변 인물로 찰리를 돌보는 간호사, 얼떨결에 이 집에 끼어든 어린 선교사, 찰리의 전처, 피자 배달부가 전부이다.
적은 등장 인물이지만 짜임새 있는 서사와 인물간 갈등이 잠시도 극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특히 주인공인 브랜드 프레이저의 연기가 압권이다.
젊었을 때 미이라 시리즈와 조지 오브 정글에 나왔던 그 꽃미남은 중년의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자폐를 가진 아이와 부인과의 힘든 이혼, 초기 성공에 비해 망가진 그의 경력으로 이 영화 출연 전 그는 잊혀진 배우였다.
수 년 전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그의 이런 사정을 모르고 흘려 들었다.
영화를 보면 그의 화려한 젊은 날과 수많은 아픔을 겪은 후 지금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가 수상자로 호명되자 사람들이 수 분 동안 기립 박수를 쳐 주는 장면이 있다.
상처를 극복하는 한 인간을 바라 보는 것은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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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설 모비딕을 생각한다.
영화에서 고래는 비만한 사람의 멸칭이고 고래는 소설처럼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주인공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고래는 단지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역시 스포일러라 생략한다.
소설에서 고래 모비딕의 입장에 대한 서술은 없다.
모비딕으로서는 바다에서 조용히 살다 괴롭히는 인간을 만났을 것이다.
모비딕도 찰리처럼 죽어 간다.
찰리와는 달리 자신이 왜 인간들에게 미움을 받는지도 모를 것이다.
왜 에이허브가 자신에게 원한을 갖는지, 이쉬마엘, 스타벅스와 선원은 왜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기름을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찰리는 마지막에 구원을 받지만 모비딕은 어떤 생각을 하며 최후를 맞이 하였을지 알지 못한다.
허먼 멜빌이 살아 있다면 한번 이와 같은 시작으로 소설을 써 달라고 싶다.
"Call me 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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