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웰빙
2025.10.01 10:04

<칼럼 49> 불편함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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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160 추천 수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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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49> 불편함이 주는 선물
 
산을 찾은 지 어느덧 15년.
나는 여전히 산행과 백패킹을 이어가며,
땀과 고독, 때로는 위험까지 마주한다.
배낭을 메고 산길로 들어서면,
도시의 소음은 서서히 멀어지고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낮고 긴 숨결,
발밑 흙이 전하는 묵직한 울림,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물소리.
자연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나를 맞이한다.
그 순간, 나는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치유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낀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몸은 다시 단단해진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혼자 산에 가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깊은 산속에서의 야영은 무섭지 않나요?”
“홀로 수천 마일을 달리는 로드 트립은 어떻게 가능하죠?”
나는 그들의 질문 속에서 다른 진실을 듣는다.
불편은 여정의 필수이고,
위험은 언제나 곁에 드리워진 그림자이며,
고독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매번 깨닫는다.
홀로 산을 오를 때면
사람들 틈에서 잊혀지기 쉬운 질문들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그 길 위에서 홀로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선물이다.
고독은 나를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 주는 뿌리다.
등산이나 백패킹은 언제나 불편하다.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며,
어깨 위 배낭은 시간이 지날수록 돌덩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정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눈부시게 다가온다.
고통이 깊을수록 성취는 더 선명하다.
산은 늘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몸의 고통을 감수할 때,
마음의 자유는 더 커진다는 것을.
죽음을 외면하는 우리의 태도는 또 어떠한가.
장례식은 점점 짧아지고,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래야 삶이 깊어진다.
나는 또한 ‘미소기(禊, みそぎ)’라는 의식을 믿는다.
실패할 수도 있는 거대한 도전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
30km의 산행을 끝까지 걸어보는 것,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를 홀로 거니는 것,
낯선 언어로 청중 앞에 서는 것.
그런 불편한 도전 속에서만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한 과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나 자신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다.
‘미소기’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나를 새롭게 빚어내는 통과의례다.
그리고 언제나, 자연은 그 자리에 있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발을 단단히 받쳐주는 흙.
그러나 우리는 사무실 불빛과 콘크리트 벽 속에서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숲길을 걸을 때면, 자연은 내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너는 여기에서 왔다.
너는 불편을 견딜 수 있는 존재다.”
나는 결핍의 교훈을 사랑한다.
도시에서는 버튼 하나로 배고픔과 갈증이 사라지지만,
산에서의 부족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등산 중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도시의 어떤 음료보다도 달고,
온종일 고생 끝에 먹는 단촐한 밥은
성대한 잔칫상보다 값지다.
밤하늘을 천장 삼아 잠드는 순간,
나는 풍요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충만을 배운다.
없음 속에서야 있음이 빛나고,
부족 속에서야 감사가 자란다.
편안함은 언제나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쉽게 사라진다.
따분함, 고독, 신체적 도전, 위험, 죽음, 미소기, 자연, 결핍
이 모든 불편함 속에서만
우리는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낀다.
편안함의 그림자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바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 감각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산을 오를 때의 거친 숨결 속에,
홀로 앉아 밤하늘을 바라볼 때의 침묵 속에,
뜨거운 햇살 아래 흘린 땀방울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결핍의 순간 속에.
삶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편안함은 달콤하지만, 너를 깨어 있게 하지 않는다.
불편을 선택하라. 
그곳에서 너는 네 자신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NOTE: 최근에 Comfort Crisis (편안함의 위기, 링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네바다 주립대학교의 저널리즘 교수인 Michael Easter가 쓴 책으로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대인이 지나치게 위험을 회피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할 때 어떤 위기가 찾아오는지를 다루며, 저자는 자신의 북극 탐험 경험담을 바탕으로 열 가지 소주제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1. 편안함의 함정, 2. 따분함 3. 고독, 4. 신체적 도전, 5. 위험 감수, 6. 죽음, 7. 미소기(극한 도전), 8. 자연 친화, 9. 결핍, 10. 배고픔 등등. 그 소주제들을 제 삶과 경험 속에서 다시 반추해 보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끌리는 일부 주제들을 빌려와 제 자신의 목소리로 시적 산문으로 풀어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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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에코 2025.10.01 15:55

    창공님, 잘 읽었어요.

    산행을 통해서 자신만의 어떤 깨달음에 다다르셨군요.

    공감하는 한 구절은 "결핍의 교훈"입니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신동엽이 나와서 말하길, 자식에서 가르쳐야할 중요한 하나의 덕목은 결핍을 가르쳐야하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감동먹었죠. 근대 이거 쉽지 않죠.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으니까요. 근대 결핍을 잘 모르면 풍요를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다시 한번 돌아봤네요.

     

  • profile
    휴먼 2025.10.01 19:17

    창공님의 글 저도 잘읽었어요. 

    요즘 유행하는 "속도보다 방향이다" 에 결합하여 늘 불편함의 방향으로 가보겠습니다.

  • profile
    창공 2025.10.02 09:33

    멋있는 말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저도 새겨 보겠습니다.

  • profile
    창공 2025.10.02 09:34

    이 책이 한국에서도 번역돼어 엄청 인기를 끌고 있네요. 책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영상 하나를 소개 합니다. 

     

  • ?
    야곱 17시간 전

    "자연을 통한 '불편함'을 마주함으로 살아있음을 확신한다". 참 좋은 글입니다. 

    한편, 우리 모두가 ''자연을 너머 인간들 사이에 '불편함'을 통해 살아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자신의 서바이블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미 많은 이익 중심 인간관계에 지쳐있습니다.

    이 우리들은 인간 관계에 있어 편한 것(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닌 이런 '불편함'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요?

    그 만남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한 만남을 통해, 결국 너나 나나 우리 인간은 별 다른 것 없는, 서로 이해와 사랑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연약한 인간들이 그 불편한 만남을 지속함으로 서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 하고 화두를 던져 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인간 사이의 신뢰회복의 가치를 말하기에는 돌이킬 수 없이 이미 지나버린 세상인가요?

     

    불편함을 택하려 한다시는 휴먼님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이번 캠핑 동안 걸으면서 이 화두로 생각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좋은 글, 그리고 좋은 댓글들 읽고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 profile
    창공 4시간 전

    야곱님께서 엄청난 화두를 던져 주셨네요.
    거친 자연보다 더 큰 마음의 수양을 요구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기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지쳐 자연으로 귀속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불편한 만남을 통해서도 ‘살아 있음’과 성장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때로는 종교적 차원에서의 인내와 관용이 필요한 난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죽기 전에는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가야할 숙제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성케하는 더 큰 숙제를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