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음은 서서히 멀어지고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낮고 긴 숨결,
발밑 흙이 전하는 묵직한 울림,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지막한 물소리.
자연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나를 맞이한다.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낀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몸은 다시 단단해진다.
“혼자 산에 가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깊은 산속에서의 야영은 무섭지 않나요?”
“홀로 수천 마일을 달리는 로드 트립은 어떻게 가능하죠?”
불편은 여정의 필수이고,
위험은 언제나 곁에 드리워진 그림자이며,
고독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매번 깨닫는다.
사람들 틈에서 잊혀지기 쉬운 질문들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그 길 위에서 홀로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선물이다.
고독은 나를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나를 붙잡아 주는 뿌리다.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며,
어깨 위 배낭은 시간이 지날수록 돌덩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의 골짜기를 지나야만
정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눈부시게 다가온다.
고통이 깊을수록 성취는 더 선명하다.
산은 늘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몸의 고통을 감수할 때,
마음의 자유는 더 커진다는 것을.
장례식은 점점 짧아지고,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래야 삶이 깊어진다.
실패할 수도 있는 거대한 도전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
30km의 산행을 끝까지 걸어보는 것,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를 홀로 거니는 것,
낯선 언어로 청중 앞에 서는 것.
그런 불편한 도전 속에서만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한 과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나 자신을 벗고 새롭게 태어난다.
‘미소기’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나를 새롭게 빚어내는 통과의례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발을 단단히 받쳐주는 흙.
그러나 우리는 사무실 불빛과 콘크리트 벽 속에서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숲길을 걸을 때면, 자연은 내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너는 여기에서 왔다.
너는 불편을 견딜 수 있는 존재다.”
도시에서는 버튼 하나로 배고픔과 갈증이 사라지지만,
산에서의 부족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등산 중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도시의 어떤 음료보다도 달고,
온종일 고생 끝에 먹는 단촐한 밥은
성대한 잔칫상보다 값지다.
밤하늘을 천장 삼아 잠드는 순간,
나는 풍요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충만을 배운다.
없음 속에서야 있음이 빛나고,
부족 속에서야 감사가 자란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쉽게 사라진다.
따분함, 고독, 신체적 도전, 위험, 죽음, 미소기, 자연, 결핍
이 모든 불편함 속에서만
우리는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잃은 것은 바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산을 오를 때의 거친 숨결 속에,
홀로 앉아 밤하늘을 바라볼 때의 침묵 속에,
뜨거운 햇살 아래 흘린 땀방울 속에,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결핍의 순간 속에.
“편안함은 달콤하지만, 너를 깨어 있게 하지 않는다.
불편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만남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NOTE: 최근에 Comfort Crisis (편안함의 위기, 링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네바다 주립대학교의 저널리즘 교수인 Michael Easter가 쓴 책으로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대인이 지나치게 위험을 회피하고 편안함만을 추구할 때 어떤 위기가 찾아오는지를 다루며, 저자는 자신의 북극 탐험 경험담을 바탕으로 열 가지 소주제를 엮어내고 있습니다: 1. 편안함의 함정, 2. 따분함 3. 고독, 4. 신체적 도전, 5. 위험 감수, 6. 죽음, 7. 미소기(극한 도전), 8. 자연 친화, 9. 결핍, 10. 배고픔 등등. 그 소주제들을 제 삶과 경험 속에서 다시 반추해 보았습니다. 이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끌리는 일부 주제들을 빌려와 제 자신의 목소리로 시적 산문으로 풀어내 보았습니다.
창공님, 잘 읽었어요.
산행을 통해서 자신만의 어떤 깨달음에 다다르셨군요.
공감하는 한 구절은 "결핍의 교훈"입니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신동엽이 나와서 말하길, 자식에서 가르쳐야할 중요한 하나의 덕목은 결핍을 가르쳐야하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감동먹었죠. 근대 이거 쉽지 않죠. 편안하게 살려고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으니까요. 근대 결핍을 잘 모르면 풍요를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다시 한번 돌아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