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 31회>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부)
이 세상에서 권력이나 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을 빼고, 불평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다수가 실제로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 가치관 조사”라는 게 있다 (링크). 100 여국의 사회과학자들이 각 사회의 사회문화적, 윤리적, 종교적, 정치적 가치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조사이다. 이 조사의 한 항목인 사회 불평등 인식 조사에서 수년 동안 한국이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2014년 이 조사에서 “당신은 계층간의 수입이 보다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한국인들은 24%만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100여 개의 조사 대상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고 가히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불평등 지수가 가장 안 좋은 미국인들조차도 그 질문에는 32%가 나왔고, 반면 불평등 지수가 낮은 독일인들은 58%로 나와서, 이들 나라와의 격차를 실감나게 한다. 시간이 더 흐른 2024년에는 같은 질문에 대한 한국인들의 답이 10년 사이에 24%에서 12%로 반토막이 났다. 더 심각한 것은 “계층간에 수입의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에 한국인들은 60%가 그렇다고 대답해, 이 수치도 100여 국가 중에서 나쁘게 나왔다. 지금의 불평등에 대한 낮은 감수성도 모자라 계층간의 수입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국인들의 불평등 인식은 가히 병적인 수준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다수가 불평등에 대해 둔감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의 상태를 용납하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뉴욕 타임즈에 <한국은 소멸하고 있는가? (Is South Korea Disappearing?)>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링크). 기본적으로는 저출산 현상에 대한 얘기이지만, 현재 출산율 0.7이라는 초저출산율의 원인으로, 잔인한 경쟁 사회로의 지향이 한국인들을 병들게 한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 최근 미국 출산율은 1.7, 프랑스는 1.8이다.) 한국 사회문제 전문가인,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들의 인구 감소율은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시기를 제외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인구 소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링크).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왜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인구 감소에 있어 ‘인류 역사의 최악’이라는 불명예의 딱지를 받아야 하니 말이다.
이런 침통한 분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태리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전세계 나라들 중에서 허무주의가 가장 급진적인 형태를 보이는 나라가 한국이라면서 그 원인으로 1) 끝없는 경쟁과, 2) 극단적 개인주의, 3) 일상의 사막화, 그리고 4) (살인적인)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분석했다 (링크).
또한, 영국의 킹스 칼리지의 런던 정책 연구소에서 국가 구성원들간에 갈등, 혹은 “문화 전쟁(Culture War)”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28개 OECD 국가들을 비교 조사한 결과, 한국은 압도적 1위를 거두웠다고 한다 (링크). 어느 나라와도 비교 안 될 정도로 12개 항목 중에 무려 7개 항목에서 한국은 일등을 차지한 것이다. 그 항목을 보자면 1) 빈부 갈등, 2) 이념 갈등, 3) 정당 갈등, 4) 남녀 갈등, 5) 세대 갈등, 6) 종교 갈등, 7) 학력 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한 마디로 갈등 공화국인 것이다.
위의 국제적인 조사 외에도, 국내 자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들이 나온다. 서울대 발전 연구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세계의 관용도” 조사를 벌인 결과, 52개 대상국 중에서 한국은 52등인 꼴찌를 차지했다고 한다 (링크). 예를 들어, “당신의 아이가 공부 못하고 있는 아이와 사귈 때 사귀도록 도와 줄 것인가, 아니면 같이 놀지 말라고 한 것인가” 같은 질문에 한국인들은 대부분 후자의 답을 택했다고 한다.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한국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이 1,100불을 넘지 못하는 르완다 보다 성숙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최근에 작고한, 재야 경제 학자인 정태인님에 따르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250년 역사에서 한국만큼 더 불평등한 공동체는 없다라는 어마무시한 평가를 내렸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시대는, 주인공 장발장이 나오는 소설 <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0년 프랑스 혁명 당시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그 때보다 더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링크). 수치로 말한다면 그 때의 불평등 지수가 10점 만점에 7.2 이라면 현재의 한국은 9라는 것이다. 이 수치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한 경제 전문가의 말이니 새겨 볼 필요는 있다.
이런 암울한 통계나 분석들을 보면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위의 인용된 부정적인 수치들만이 한국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전문가들에 비친 한국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수년 뒤에 돌아가서 살아갈 고국이기에 고국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우려를 갖고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낮고, 국민들 간에 갈등이 심하며, 관용이 최고로 적은 나라. 이런 거대한 난제들로부터 한국이 빠져 나올 수 있는 비책은 없는 것일까?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원인 진단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단적으로 김누리 교수의 분석을 빌리자면, 이 현상들의 핵심 기저에는 “경쟁"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한국과 이를 부추기는 잔인한 교육 제도와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 어떤 이해가 필요하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가. 다음 글 2부에서 이를 계속 풀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