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서 왜 올라갔다가 내려 올 것인데 굳이 번거롭게 산을 오르냐는 물음을 자주 듣는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 주고 싶다. 의도적으로 선택한 도전과 고통을 감내한 후에 오는 활력이야 말로 몸과 마음이 원하는 진정한 ‘찐’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우리의 지각과 인지 능력은 몸을 통해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사물을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에서 사물을 지각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이러한 몸의 지각 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따라서 몸은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고 했습니다. (Merleau-Ponty, Maurice. Phenomenology of Perception (지각의 현상학). Routledge, 2002. p. 204)
니이체Nietzsche)는 그의 역작 ‘‘짜라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oke Zarathustra)”에서 그의 몸의 철학을 드러냅니다.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다른 가르침이 필요없다. 대신에 신체에게 작별을 고하고 입을 다물면 된다….몸은 하나의 거대한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로 궤어진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이며, 가축의 무리이자 양치기이다.… 형제들이여, 그대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작은 이성도 육체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의 위대한 이성은 몸의 작은 도구이며 장난감일 뿐이다".
니이체는 “육체에 대한 경멸은 인간 자신에 대한 불만족의 결과”라고 설파하고 몸의 바탕을 둔 삶을 중시했고 그 삶을 온전히 살수 있게 해주는 ‘신체’를 최고의 이성으로 치켜 세웁니다. 몸에 ‘거대한 이성’이라는 왕관을 씌웁니다. ‘이처럼 신은 죽었다’, 삶의 철학, 초인의 삶을 주창한 니이체가 플라톤과 기독교적 영원불멸의 영혼과, 또 데카르트적 이성적 자아에 도취해 있는 거대한 서양 정신을 단칼에 베어 버립니다. 초인으로서 인간의 자기극복이란 몸의 건강과 온전함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몸이 없을 때, 우리는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잃어버리고, 정신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심신의학(psychosemantics)에서 몸과 정신의 통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라는 개념에서 몸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지각 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따라서 그 지각의 핵심인 몸이야 말로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몸 > 감정 > 기억 > 인지로 연속체로 진화한다. 우리 몸은 존재의 근거이자 정체성의 원천이고 자아실현의 도구이다. 몸의 생생함을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몸의 생생함을 유지하는 길은 몸을 학대와 잔인함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몸에 적절한 좋은 스트레스나 고통을 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몸을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선택해서 가하는 몸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얻어진다.” - 창공님
우리 산악회의 신체적 고통은 바로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몸을 사랑하는 방법이 몸에게 적절한 스트레스와 통증을 주어서 몸을 활기차게 만든다는 거에 동감합니다. 몸에 자극을 주어야 몸이 살아나려고 재생하고 복원한다는 거죠. 잘 읽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20년전부터 말로는 '몸은 하나요 마음은 순식간에 천갈래만갈래 나눠질 수 있다'면서 몸이 가장 정직하다면서 건강과 사랑에 대한 개똥철학을 이렇게 입에 달고 살았는데요...
저도 미국와서 감사히 베산을 만나고 산행을 하면서 근육이 강화되고 자연과 하나되는 신체적 건강과 물아일체에 인생의 기준을 더더욱 두게 되었습니다.
창공님의 경험과 글내용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노마드님. 한국 잘 다녀오셨나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신체건강과 몰입에 인생의 기준을 둔다는 말씀에 급공감합니다.
제가 보니까, 생활 속의 많은 관계나 일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느냐, 나에게 집중을 해서 만족을 얻느냐의 기로에 설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증거로 제가 한국에만 가면 사람 만날 일도 많고 다닐 일도 많아지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연히 줄어들고 이에 따라 운동도 못하고 내 몸 관리도 잘 안 되더라고요. 반면에, 미국에 사는 삶은 보다 단순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많고 운동 등을 통한 내 몸 관리도 훨씬 쉬워지고요. 각자가 주어진 삶에서 밸런스 맟추기가 어려울텐데, 나이가 들 수록 후자쪽으로 기우는 게 삶의 질에 좀 유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복잡한 삶을 단순화하자, 이게 저의 모토입니다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거겠지요. 재미있는 지옥인 한국과 재미없는 천국인 미국 생활 사이에서, 이제 너무 재미없는 천국에 젖어 버린 게 아닌가하는 조심스런 성찰도 있고요.
본문에 언급한 요가, 불교, 한의학에서 몸을 바라보고 다루는 부분에 대한 추가 사항입니다.
요가 철학은 몸을 전체주의적(holistic) 관점에 입각해서 몸과 정신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된 통합체로 본다는 것이 핵심일 것입니다. 요가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목표인 바, 마음 챙김이 있는 움직임, 호흡법, 명상을 통해 신체 인식, 감정조절, 내면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점이 ‘몸의 철학'과 관련해서 시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이 경우에도, 이 통합체의 시작은 몸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은 약간 색깔을 달리해, 몸은 영원하지 않는 무상한 존재이고 이런 몸에 대한 집착은 고통의 윈인이 된다고 가르칩니니다. 하지만 불교는 이러한 무상함과 고통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길도 동시에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몸과 사물에 대한 집착을 풀고, 마음을 명상을 통한 지혜로 단련함으로써, 우리는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몸은 고통의 근원이 될 수 있지만, 또한 해방의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상을 훈련함으로써, 우리는 마음챙김, 자비, 그리고 지혜를 키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고통의 끝과 평화와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와 같이, 다른 종교와는 달리, 금욕주의나 신체 건강을 소홀히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점, 몸의 제한을 인정하면서도 몸의 성장과 변화 가능성을 인식하며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도록 권장한다는 측면에서 큰 시사점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몸과 마음과 정신을 통합체로 보고 몸을 이 연결체에서 떼어놓지 않고 다루는 점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생명의 원천인 에너지(=기)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이것도 몸이 존재의 바탕이라는 점은 같은 맥락을 갖습니다.
눈감고 앉아서 하는 명상을 할 경우 잠에 빠져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등산은 끊임없이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걸으면서 좋은 자연 명상 환경을 제공합니다.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 전체를 자극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자극도 하지 않는 백색 사운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걷는 등산이 우리 뇌에 최적의 자극을 받는 환경이라고 하지요.
동의합니다. 자연은 신체 건강 뿐만아니라 최고의 정신 건강을 제공하는 환경이라는 것을 늘 체험으로 확인합니다. 말씀하신 백색 소음(White Noise)은 종류에 따라 집중과 이완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데, 이 경우 먼저 명상을 통해 지각력을 증진시킨 후에 자연으로 나간다면 그야 말로 자연의 백색 소음을 최적으로 활용해서 몸의 활기와 평화의 에너지로 전환,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몸의 지각력을 높이면 운동의 효과를 인지하는 힘도 배가 되고 두뇌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참고한 책이나 기사, 강연입니다.
책: Bloom, Paul (2021). The Sweet Spot: The Pleasures of Suffering and the Search for Meaning Hardcover. https://a.co/d/3UOMSe4
논문: Oh, S.S. (2014) “Universality and specificity of conceptualization of FEAR in Korean and English.” Korean Semantics 44.2, 141-170. 한국어와 영어의 두려움 개념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한국어 의미학 44.2., 141-170.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256918
박문호 박사 강연: "느낌에 대한 뇌과학 보고서" https://youtu.be/0ylcGL-IbZo?si=tfR9RHIYc4uUXya0
김주환 교수 강연: "나는 몸이다 - 물리적 신체와 소매틱 신체": https://www.youtube.com/live/kLAaWxYi-To?si=lRH9j5ep7efRo2h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