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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5 12:19

얼마전 결혼한 아들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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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73 추천 수 0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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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결혼한 아들놈에게..

 

 

 

 

수빈아, 한참 지금 깨가 쏫아질때이겠구나. 깨 볶는 냄새가 여기까지 밀려온다. 지난 10월 결혼한 너의 사랑하는 와이프가 요즘 아빠 혼자 지낸다고 크리스마스때 너희둘 올라와 연말까지 함께하고 가겠다고 전화 왔더구나.

 

지난 땡스기빙때도 와서 3일 있다 간다는거 아빠가 토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루만 자게하고 금요일 돌려보낸거 미안하다. 사실은 데스밸리 일요일 캠핑가서 놀려고 계획해 놓은게 있어 아빠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뻥친거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한창 깨를 볶고 있는 너에게 결혼 31년차 인생선배로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께

 

그냥 얼마전 있었던 내 하루의 평범한 일상이야. 언뜻들어면 뭐가 슬퍼? 하겠지만 너도 세월이 흘러 내나이가 되어 잘 곱씹어보면 슬픈이야기가 되니까 들어둬..

 

 

 

너가 아빠보다 더좋아하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안 서열1위 연희동 7공주파 면도날이라고 아빠가 유일하게 맥을 못추는 너 엄마랑 몇일전 카톡으로 한판했다.   

 

큰싸움은 아니고 그냥 결혼 30년이 넘는 노인네들이 하는 그런 사소한 부부싸움이었고 보스인 너의 엄마가 한국 체류중이어서 옆에 없기때문에 조금 기어올라도 당장 전치 3주의 부상은 면할수 있다는 사실에 아빠가 조금 용기를 내어 기어올라 봤다.

 

하지만 기어오른 아빠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보스인 너의 엄마에게는 조금 심각하게 권력의 위협으로 다가왔나 보더라. 엄마가 거의 2주일 넘게 아빠에게 카톡 한번없이 연락을 끊더구나. 아빠에겐 자유를 만끽할 기회였지만 엄마에겐 권력질서 유지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마련의 고뇌의 시간이었겠지.

 

그런데 아빠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의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권력순위 확실히 할려고 시도할거고 아빠도 가정과 세계평화를 위해 침묵을깨고 어제 너의 엄마에게 아빠가 먼저 카톡 영상통화를 시도해봤다.

 

영상 통화때 요즘 아빠가 나이가 들어 치매끼가 있는지 갑자기 너의엄마 이름이 생각안나  “여보” “허니라는 말이 실수로 튀어나오더라. 그래도 보스인 너엄마에게 아빠가 공손한 자세를 취하니 너의 엄마도 기분이 풀렸는지 그래 잘지내?” “밥은 잘챙겨먹고?” 하면서 권력질서 유지에 대한 안도감이 들었는지 무척 온화하고 따스한 모습이더라.

 

 

이렇게 서열끝순위 아빠가 먼저 다가와 숙여줄걸 바라는 니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아빠가 평소보다 조금 오버를 하고 말았다.

 

당신원하면 한국 더 있다오고 나는 매일 잘지내고 있어니 아무걱정말고 푹 쉬다가 와

 

어때? 아빠 잘했지?

 

 

 

근데 말이다. 이런 화기애애한 조직의 단합중에서도 불행의 씨앗은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어.  보스인 너의 엄마가 대화도중 갑자기 망고의 안부를 묻더라.

 

하필이면 화상 통화중이었고 망고좀 비춰봐라 하는데 망고가 현재 집에 없잖니.

 

아빠도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이다. 보스인 너의 엄마가 없는틈을 타 최소한 망고에게도 밀리는 아빠의 서열을 다시 좀 올리고 싶었고 아빠도 오라는데는 없지만 갈데는 많아 사실 니 엄마 없을때 몇군데 댕겨오고 싶었다. 그래서 망고 훈련소 보냈다.

 

허락없이 보냈다고 왕창 구박 받았고 너도 알다시피 1살도 훌쩍 넘은 망고를 아직 애기니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빠보단 망고걱정이 가득이더라.

 

참 슬픈일이다.

 

 

너도 혹시 나이들어 키우는 견순이나 견돌이보다 이쁨 못받고 서열밀리면 느낄거다.

서로 상부상조하자.  

내가 비밀로 하고 봐줄께.

너도 나이들면 가끔 몰래 튀고 싶은 유혹이 있을거다..

 

아빠가 데스밸리 다녀오며 34일동안 내비 아가씨랑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근데 내비  아가씨는 참 친절하더라. 아빠가 길을 잘못들면 친절히 다시 설명해주고 절대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지 않더라. 4일째 돌아오는 날에는 내비 아가씨랑 친해져 말놓으라고 하고 싶더라. 나도 니엄마가 내비 아가씨처럼 비록 서열 말단 조직원이라도 연민의 심정으로 나를 대해 줬어면 한다..

 

 

 

그리고 니엄마가 통화 마지막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묻더라. 아빠도 좋아하는 생선회 냉동에 집락백에 챙겨 넣어둔 하사품이 있는데 찿아 먹었냐고. 벌써 챙겨먹고 없다 했더니 그럼 니처도 좋아하니 가서 직접 생선잡던지 알아서 구해  너희들오면 먹이란다. 같이 사먹어란 소리는 안하더라.

 

아빠보고 이제는 배타란다. 이나이 아빠에게 어부가 되란 말인가보다. 비록 이아빠가 가끔은 농땡이 쳤지만 나름 경제생활도 했다. 근데 결국 이나이에 직접 배타라는거 같다.

 

슬픈일이다

 

너희들 회먹고 싶다하면 아빠에게 직접 잡아오라며 매번 배타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한창 깨볶는 새신랑 수빈아, 가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면 슬픈영화나, 인간극장 그런 드라마 보지말고 너의 장인이나 아빠같이 결혼 30년 넘게한 분들한테 소주 한잔만 사주세요 그래봐라.

 

그리고 한마디 물어봐라. “행복하시죠?” 그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거다.

 

 

 

 

 

그리고, 수빈아 너의 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라. 요즘 아빠혼자 지낸다고 일주일씩이나 크리마스와 연말을 함께 할려는 너처의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이쁘다.

근데 그거아니?

아빠집에 올땐 아빠와 의논하고 허락받고 집에와라.

요즘 시대엔 그게 예의다.

너의 처와 전화통화때 말은 못했지만 나 사실 망년회 한다고 노는 계획 두개나 있다. 나도 바쁘다.

 

 

 

그리고, 망고는 너 엄마에게 3일 훈련갔다 했는데 사실 3주간 보냈다.

비밀로 해주라.

나 Redwoods 캠핑 가야된다.

 

나도 망고 돌보는 대신 놀러다니고 싶다. 본의아니게  너와 너엄마에게 선의의 거짓말 하는게...

슬픈 일이다.....................

 

 

See the source image

 

 

 

연말이고 이거저거 좀 정리하다 잠시 쉬는 도중  컴퓨터 앞에 앉아  끄적거려 봅니다.

조금 주책스럽더라도 같이 그냥 한번 웃고  갑시다.

 

 

 

 

  • ?
    Sunbee 2022.12.15 12:55

    아. 이거 오글거려서... ;)

    좋은 남편 시아버지 아버지 개주인...

    오글오글 행복한 가정.  망고까지..  

    (말만 그렇지 내 그러며 사는지 알았지 ㅎㅎ)

     

    가족 모두와 편지로 카톡으로 소통하는게 참 좋네요 !!

     

     

  • profile
    보해 2022.12.15 13:33

     

    그냥 쇼윈도우 남푠이고 아빠입니다.

    보스말로는 진짜 성질 개떡 지랄같은 막가파 말단 조직원이라네요 ㅠㅠ

  • ?
    Sunbee 2022.12.15 15:53

    아. 글쿠

    조직말이 나와서... 탈퇴 운운 하시던데, 

    가입은 자유지만, 탈퇴는 좀 쓰디 쓴디요...

    탈퇴전에 저를 쪼께 봐야 쓰것는디요

  • profile
    보해 2022.12.15 15:56

    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걸출한 조직원 배출했다고 뿌듯했는데 뭐 조직에서 호랑이 새끼를 키웠네요. ㅠㅠ

    불쌍한 독거 노인입니다. 한번 봐주십쇼...

  • profile
    파랑새 2022.12.15 16:09

    퇴직금 정산 하시겠수?

  • profile
    파피 2022.12.15 19:14

    보해님, 넘 잼나서 긴 글이 후딱 읽히네요. ㅋㅋㅋ 아드님이 시아버지까지 알뜰히 챙기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결혼을 했군요~ 

  • profile
    아리송 2022.12.15 21:23

    꿀잼 스토리!!! 눈이 피로해서 끝까지 읽기는 좀 힘드네요.

  • ?
    개나리 2022.12.15 23:13

    읽다 중간에 끊으려했는데 끊을수가 없네~•

    올해들어 가장 많이 웃었네요~~^^

  • ?
    가을 2022.12.16 14:39

    행복과 불행은 세트로 다닌다던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쭈구리 정책을 쓰시는 보해님 존경스러워요 아드님 잘 키워  짝지어 주셨으니 시원 섭섭하시겠네요 추카드립니다

  • ?
    사비나 2022.12.17 08:00

    하하하 보해님 웃다가 뒤로 넘어졌습니다. 가을님말처럼 "쭈구리정책"을 가장한 가족사랑? ;-)

  • profile
    Aha 2022.12.17 21:22

    기특하고  이뿐 맘씨를 가진 며느님 입니다.

     잘 살끼라.

    가들이 찾아온다 카면  반갑고 고마운 우리 나이가 됐어요. 

  • profile
    보해 2022.12.17 23:03

    레드우드로 캠핑을 왔는데 노인네들이 춥다고 초저녁 10시 30분부터 전부 슬립핑백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콧베기도 안보이네요. ㅋ

     

    슬립팡백속애 나도 기어들어와  인터넷이 터져  내가 다시 글을 읽어보니 상당히 푼수 스럽네요. 허-얼

     

    웃자고 쓴글 조금 팔불출스럽지만 따뜻한 의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나이에 쭈구리 말고는  생존을 위한 다른 대안도. 없심니다. 쭈구리의 생활화 또는 토착화.할 나이들 입니다.

     

     

    월남전때 한부대에서 베트콩과의 전투때 경상도 출신 사병들만 살아남은 일화가 있는데요.

    이유인즉슨 밀림을 수색중 갑자기 베트콩둘이 나타났는데 지휘관이 경상도 출신이라 베트콩이 나타나자 전대원들에게 "쭈구리" 라 외쳤는데 경상도 출신 사병들만 말을 알아듣고 쭈구렸고 나머지는 멀뚱멀뚱 서있다 총맞고...

    그나마 살아남은 사병들도 베트콩이 또 나타나자 지휘관이 이번에는 " 아까멘치로" 라도 외쳤는데 이번에도 경상도 출신 사병들만 쭈구렸네요.

     

    어야동동 이 나이엔 쭈그리는게 살아남는 생존방법입니다.

     

    이상은 저처럼 생존을 위해 쭈그리는게 생활화되신  눈이 크신 안대 스님의 말씸이었심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