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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님 글모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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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ansa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66

 

 이병로의 백패킹 연가 _ 그레이트 샌드 듄즈 국립공원

 

모래바람이 부르는 밤의 노래

 

글 사진 · 이병로 미국 주재기자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Rocky Mountain National Park, 이하 RMNP)은 미국 국립공원 중에서도 방문객이 많기로 유명하다특히콜로라도 덴버에서 차량으로 1시간 3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접근성과 잘 조성된 편의시설 인프라 덕에, 5월 중순 이후 성수기엔 탐방객과 하이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4월 중순은 록키산을 방문하기엔 다소 이른 시기이다하지만봄 야생화가 록키산맥의 툰드라 지형에도 도달했기를 기대하며, RMNP와 더불어 그레이트 샌드 듄즈 국립공원(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 이하 GSDNP) 백패킹 일정을 짠다배낭을 꾸리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 소풍 전날과 같이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부푼 기대 속에 배낭을 꾸리다 보니이미 마음은 콜로라도 록키로 달려간다.

 

 

 

북미 최대 모래언덕을 향하여

동부 워싱턴 디씨에 위치한 덜레스(Dulles) 공항을 출발하여 4시간의 비행 끝에 콜로라도 덴버에 연착륙한다첫 대면하는콜로라도 덴버의 공기는 차다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의 초봄 날씨를 연상시키듯코끝이 조금 매울 정도의 추위가 느껴진다덴버는 해발 1,800m가 넘는 콜로라도 고원(Colorado Plateau)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덴버 공항에 도착하면여행객들 모두 록키의 전경에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광활한 평지에 공항이 위치한 지라사방 어느 방향에서도록키산군 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봉들을 필두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군들은 하얀 만년설을 이고서북방향으로 길게 누워 북아메리카를 가르고 서 있다그래서 록키산맥을 대륙 분단(Continental Divide)이라 칭하고또한 록키산맥의 주능선을 따라 북미의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CDT(Continental Divide Trail)가 형성되어 있다눈앞에 펼쳐진 록키산맥의 웅장한 위용을 보고 있자니, “하는 탄성이 절로 터지며심장은 또 다시 설렘으로 요동친다.

콩닥거리는 설렘에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 진다렌터카를 픽업한 후록키 산군을 우측에 끼고, 25번 고속도로를 타고 콜로라도주 남쪽으로 질주한다. 2박 3일을 보낼 첫 목적지 GSDNP로 향한다.

GSDNP는 덴버에서 남쪽으로 400km 정도 떨어진 북미 최대 모래언덕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헤라드 산(Mt Herard·4,053m)을 비롯 해발 4,000m가 넘는 고봉들을 품고 있는 록키산맥의 산그레 데 크리스토 산군(Sangre De Cristo Mountains) 자락에 30평방 마일의 모래언덕들이 형성되어 있다. 200m가 넘는 모래언덕이 5개 이상 형성되어 있으며그 중 최고 높이의 모래언덕은 229m에 달하는데이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 샌드듄이라 한다.

지난 1데스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 백패킹 시에메스퀴토 플랫 샌드 듄즈(Mesquito Flat Sand dunes) 다녀왔었던 바. GSDNP에 대한 나의 기대감과 호기심은 더욱 커진다.

 

 

 

록키산군을 물들인 신의 불꽃

한 시간을 달리다 보니콜로라도 스프링(Spring) 시의 랜드마크인 해발 4,302m의 고봉 파이크 피크(Pike peak)가 수호신처럼 우뚝 서콜로라도 입성을 반기는 듯하다파이크 피크는 서부개척의 골드러시 시대에 서부로 향하던 이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240여 km를 더 달리다 보니해는 록키 산군 뒤로 떨어지며붉은 석양빛이 불꽃으로 화하여흰눈을 이고 있는 고봉의 산군 들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듯하다장엄한 황혼의 불꽃 쇼에 빠져들어나도 모르게차를 갓길에 정차한다신의 불꽃 축제에 초대된 것 마냥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록키의 대자연이 연출하는 장면을 마음껏 누린다.

노을빛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타오르며백발의 록키 산군들의 존재감을 더욱 선연히 부각시켜 주는 듯하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란몇 마디의 말로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순간이 경탄할 장면을 온몸오감으로 느끼며이 현장에 초대받음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날 뿐이다마치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신의 불꽃을 만났던 장면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노을이 지나가고칠흑 빛 어둠이 내린 150번 로컬도로를 타고 서둘러 야영지를 향해 달린다이내 오늘의 야영지 GSDNP 내의 피농 플래트 캠프장(Pinon Flats campground)에 도달하니시각은 어느덧 저녁 8시 반을 가리킨다덴버 공항에서 출발하여, GSDNP까지 400km가 넘는 거리를 4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셈이다.

이곳이 바로 거대한 모래 언덕임을 알리려는 것인지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모래바람이 거칠게 얼굴을 때린다모래바람은 마치 빗방울처럼 텐트를 연신 두드려 댄다밤하늘엔 모래처럼 별빛들이 반짝이고모래바람이 부르는 밤의 노래를 들으며콜로라도 록키의 첫 밤을 맞이한다.

밤새 텐트를 세차게 두드리던 모래바람도해가 뜨고 나니 어둠과 함께 사라진 듯 잔잔해진다밤새 거친 모래 바람은 텐트 안까지 모래를 들어앉혔고심지어 입안에도 모래가 씹히는 듯하다하지만이러한 불편함도 잠시눈앞에 광대하게 펼쳐진 모래언덕과 그 뒤로 장승들처럼 서 있는 만년설의 고봉들이 전개된 풍경에 압도되고 만다.

단지 모래언덕이라고 하기엔그 규모가 실로 거대하고 장대하다가장 높은 모래언덕이 225m라고 하지만피부로 느껴지는 규모와 높이는 언덕이 아닌, ‘이다데스밸리 국립공원의 메스퀴토 플랫 샌드 듄즈와 그 규모와 높이 측면에서가히 비교 불가라 생각된다.

 

바람과 만년설이 빚어낸 경이로움

GSDNP의 모래언덕 군들은 지질학 상 본래 바다였던 지형으로오랜 세월 풍화 작용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한다모래언덕 군 아래로는 산루이스 밸리(San Luis Valley)의 광대한 초지(grasslands)와 습지(wetlands)가 형성되어엘크(Elk)를 비롯하여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거대한 모래언덕 산에 매료되어나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모래언덕으로 향한다.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모래언덕 산이 형성될 수가 있었을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궁금증과 호기심은 GSDNP에서 제공하는 안내 지도를 보면 해소된다산루이스 밸리에서 불어오는 남서풍과록키의 고봉이 거대한 모래언덕 산을 빚어낸 것이다산루이스 밸리에서 시작된 남서풍이 몰고 간 모래는록키의 헤라드 산의 북서사면에 막혀마치 둥지처럼 모래 동산이 쌓이게 되었다고봉에 쌓인 눈들이 녹으면서 모래동산을 품 듯 계곡을 만들어 모래동산을 지탱하고 있는 격이다.

메다노 패스 프리미티브 로드(Medano Pass Primitive Road)에 들어선다메다노 패스 로드는 약 30km의 코스로오프로드를 즐기는 탐방객들에게 특히나 인기 있는 트레일이다메다노 패스 로드를 타고 약 16km를 운전하여 들어가면헤라드 산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의 들머리인 메다노 레이크 시작점(Medano Lake Trailhead)까지 접근할 수 있다.

다만쌓인 눈과 도로 사정으로메다노 패스 로드는 5월 중순 경에 오픈하다고 한다따라서메다노 패스 프리미티브 로드의 출발점에 차를 세우고캐슬 크릭(Castle Creek)의 종기점(End point)인 캐슬 크릭 피크닉 지역까지 오른 후메다노 크릭(Medano Creek)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헤라드 산에서 시작된 메다노 크릭은 거대한 모래언덕 군 우측으로 흘러간다.

눈이 녹은 물이 크릭을 형성하고그 크릭이 샌드듄즈를 끼고 흘러가는 모습은 매우 생경하다마치산에서 바다 해변을 만나는 느낌이다크릭의 깊이가 옅은 곳을 찾아 모래 언덕 산이 시작되는 초입으로 접근하여본격적으로 샌드듄즈 하이킹을 시작한다모래 언덕을 오르는 트레일은 따로 없다그래서 하이커들 스스로가 자신의 트레일을 만들어 가며 걷는 재미는 모래 언덕을 걷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옅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고모래 바람이 산루이스 밸리에서부터 모래먼지를 몰고 불어온다세찬 모래바람을 맞으며 가파른 오르막 모래언덕을 오르자니늪에 빠진 듯 모래밭 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고 만다그 빠지는 깊이만큼이나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진다더구나피농 플래트(Pinon Flats)는 해발 2,400m가 넘는 고산지라 산소가 희박하여모래언덕 사면을 오르는 길은더 더욱 숨 가쁘게 한다.

 

 

 

맹렬히 몰아치는 바람을 뒤로하고

하이듄(High Dune)을 오르려면크고 작은 여러 모래언덕을 넘어야 한다거친 호흡을 몰아쉬며한발 한발 무거운 발을 모래사면 따라 옮기다 보니어느덧 하이듄 아래 모래언덕 산에 도달한다모래언덕 위에 서 보니흰 눈을 이고 있는 록키의 고봉들 아래바람이 빚어낸 황금빛 유선과 사면의 향연이 설봉을 향해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모래사면의 경관에 취하는 사이날씨 변화가 심상치 않다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뒤 덮이고기온이 갑작스럽게 떨이지고모래 바람은 더 더욱 거세져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기세로 불어 닥친다하이듄 정상을 목전에 두었지만발걸음 옮기는 것은 고사하고 바람에 몸을 지탱하기도 어렵다이러한 기상 상황에서 더 이상 진행은 무리라 판단. 9km 산행으로 만족을 하고서둘러 하산을 한다.

쌩쌩덜컹덜컹~’

메다노 크릭을 건너 캠프사이트로 돌아오니텐트는 모래바람에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다텐트 가이라인(Guyline)에 팩다운으로 보강하고급하게 차안으로 피신을 한다바람은 더 더욱 거세지고옆 캠퍼의 RV 차량이 부럽기만 하다반시간이 지났을까옆 캠퍼가 다급히 차창을 두드린다내 텐트가 바람에 날아갔다고 한다팩다운하여 설치한 텐트가 맹렬히 몰아치는 모래바람에 속수무책으로 이미 날아가 버렸다.

급하게 뛰어나와 날아간 텐트를 수습하고다시 차량 안으로 피신을 한다포효하듯 굉음을 내며 몰아치는 바람은마치영화 미아라’ 속 모래폭풍을 연상케 한다육중한 지프 랭글러(Jeep짋 Wrangler) 차량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형세로모래바람은 무자비하게 차량을 흔들어댄다. ‘뭔 바람이 이리 거칠단 말인가이러다 차가 뒤집히는 건 아닐까?’ 긴장감 속에, GSDNP에서 록키의 두 번째 밤을 전전반측하며 보낸다.

새 아침이 밝자밤새 몰아친 모래바람은 거대한 록키 고봉들 너머로 잦아들고모래언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 아침의 고요와 적막이 태연하게 점령하고 있다. GSDNP에서의 23일 일정메다노 패스 로드 탐방 및 샌드듄즈 트레일 산행을 하였지만일정 내내 모래바람과의 사투였다메다노 패스 로드가 폐쇄된 탓에헤라드 산까지 등반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헤라드 산 등반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다음 행선지를 향해 짐을 꾸린다.

그레이트 샌드 듄즈를 붉게 물들이는 새 아침의 여명을 등지고콜로라도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향해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