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고 관심도 있고해서 이거저거 많이 찿아보고 합니다.
어디를 방문할을때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건, 얽힌 이야기, 에피소드등을 찿다보면 역사는 반복되고 아 여기가 이러한 배경이 있었구나 그래서 지금도 이런게 남아있고 이런현상도 있구나 하고 자주 느낍니다.
지난 2018년도와 작년 12월 "걸어서 샌프란시스코 역사탐방"하며 저혼자 신나 (ㅎ) 같이 탐방하던 회원님들에게 방문지 곳곳의 얽힌 에피소드 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등을 들려주고 싶었지만 너무 떠들면 민폐이고 또 결정적으로 정해진 시간안에 탐방을 마쳐야 해서 생략했지만 들려주고 싶었던 몇가지 이야기중 하나입니다.
첫번째로 작년 12월 탐방때 살짝만 내비친 Emperor Norton 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가보시면 아래 복장을 한 사람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 자주 보이고 관광자들 요청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Emperor Norton 복장입니다,
또한 SF 에는 술집, 호텔등도 Emperor Norton 이란 간판을 붙인곳도 가끔 있습니다.
그럼 Emperor Norton 은 누구냐? 쉽게 설명 드리면 살짝 정신이 오락가락한 자칭 샌트란시스코의 아니 미국의 황제님 이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람들이 재미이던 연민이던 진짜로 황제로 칭해주고 좋아 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노턴 황제님에 대해 알아 볼까요?
조슈아 에이브러험 노턴 (Joshua Abraham Norton) 은 영국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에서 자랍니다. 처음부터 황제를 꿈꾼건 절대 (ㅎㅎ) 아니었고 다른 많은 49ers 처럼 Placeville 부근 American River 에서 발견된 금으로 인해 서부 골드러쉬가 일어날때 1849년 돈 벌자고 샌프란시스코로 오게 됩니다. 근데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는지 직접 금을 찿아 시에라 산속을 찿아 헤메지는 안했고 600명이었던 SF 인구가 불과 2년만에 6만명으로 늘어나는 시기 부동산을 통해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종자돈 4만달러로 단기간에 25만달러로 불립니다.
1800년대 후반에 샌프란시스고 살며 기자로 일하기도했고 후에도 SF를자주 방문했고 체류했던 마크 트웨인이 쓴 현대문학의 대표적 소설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나오는 인물 "The King" 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인물이 바로 노턴을 묘사한 것입니다.
근데 사람은 부에대한 욕심은 항상 무한정인거 같습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중 하나가 쌀밥이었습니다 (놀랍죠?? 중국 광동성, 지금의 홍콩부근 에서 중국사람들도 금찿아 많이 몰려왔고 칠레 멕시코 페루등 세계곳곳서 사람들이 금찿아 몰려와 쌀 소비가 많았음)
당시 쌀은 전적으로 당시 중국 청나라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 테평천국의 난이 일으나고 거기에 흉년까지 겹쳐 중국정부는 갑자기 쌀 수출 금지령을 내립니다.
이로인해 185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쌀 품귀 현상이 일어납니다. 노턴은 머리속이 번개치듯 번쩍했고 하늘이 점지해준 일확천금의 기회임을 느낍니다.. 이것이 노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계기가 됩니다.
"쌀을 지배하는자가 세상을 지배할것이다 "
노턴은 쌀을 다 사 모으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한동안은 노턴이 사모으기 시작하는 바람에 파운드당 5센트에서 50센터로 10배가량 오릅니다. 그런데 욕심은 끋이 없어 풀지않고 더오를때까지 계속 사모으고 비축만 합니다.
그런데 짜잔... 무슨일이 일어났을까요?
쌀은 품귀지 가격은 폭등이지 노턴보다 한수 위인 놈이 (ㅎ) 페루산 쌀을 왕창 들여옵니다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 페루산 쌀을 왕창 실은 여러척 배가 짜잔 나타납니다.
쌀이 3센트까지 떨어져 버리고 노턴은 어찌될까요? 파산이죠 이때 노턴 나이 38살때 입니다.
"노턴 황제가 되어 나타나다"
파산후 그의 모습을 본사람은 한동안 없었습니다. 심각한 충격때문인지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가 종적을 감춘동안 어디서 무얼 하고 다녔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859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샌프란시스코어 다시 나타났습니다.
자칭 황제라 칭하던 노턴의 전해 내려오는 초상화 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있고 당시 샌프란시스코 유일의 신문사였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 사무실로가서 자기가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황제라며 포고문을 실어달라 합니다.
당시 노턴이 돈주고 신문에 실어달라 했던 포고문을 번역해보면
" 맞느리라. 하지만 이제 너희들이 알던 그노턴이 아니다. 노턴 1세 폐하라고 부르게. 본인은 미국의 황제이며 너희들을 구원할려고 돌아 왔노라"
이런 내용이었고 포고문은 실제로 신문에 크게 실리고 주민 모두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이후 계속 포고문을 발표합니다.
"미국시민 대다수의 간청에따라 남아프리카 희망봉 알고아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9년 10개월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낸 나 조슈아 노턴은 스스로를 이 미국의 황제로 선포하고 선언하노라. 이에 그권한에 따라 다음 2월 1일까지 연방소속의 각주의 대표들은 이도시 뮤지컬 홀에 모일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즉시 이나라의 모든 해악을 근절할수 있도록 기존 연방 법률을 개정해 , 국내외에서 우리의 신뢰와 존엄을 확신할수 있도록 하라 "
웬 황당하게 파산해 거지 비슷하게 된 사람이 돌아와 자칭 황제라 칭하고 복장도 황제 복장을 하고 심심하면 포고문이라 신문에 발표하고 식당이고 호텔이고 가게고 다니며 자기가 황제라고 무전취식에 뭐라했단 노턴 황제에게 크게 혼까지 납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더이상 황제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황제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연민인지 따스한 정감을 느껴 그랬는지 거리에서 보면 그에게 인사를 했고 시도 노턴이 유명인사가 되다보니 황제라는 직업이 있다고 발표하고 황실에서 발행한 지페라며 노턴에게 줘서 실제로 노턴이 무전취식 대신 사용할수 있게 황실지페들을 만들어 노턴에게 사용하시라고 줍니다.
사진은 시가 발행하여 노턴 1세 황실정부가 발행한거라며 노턴에게 준 5달러짜리 지폐입니다
노턴황제는 어디던지 마음데로 다녔고 나중에는 자기 황제 호칭에 더해 멕시코 보호자라는 직함도 스스로 추가하고 가끔 오락가락은 했지만 꽤 조리있게 말도 잘하고 여러 시사문제도 밝았어며 다양한 주제레 대해서도 박학 다식한 편이엇습니다. 단 정신이 가락 말고 오락일때 ㅎ
노턴은 20년간 스스로 황제에 재위기간중 나라의 파멸을 막는다고 많은 정치 개혁을 요구 했고 의회폐지를 명령했고 양당제 없애라 했고 당시 인종차별이 심하던 소수민족에 대한 공정하고 윤리적인 대우를 요구했고, 링컨보다 앞서 흑인에 대한 동등한 권리, 여성의 참정권 명령등 무언가 머리가 좀 이상하긴한데 가끔 아주 혁신적인 말과 생각들을 황제라고 명령합니다 ㅎㅎ
또하나는 백성들이 편리하게 샌프란시스코와 이스트베이를 바로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라 했는데 실제로 필요성이 있어 40년 지난후에 베이 브릿지 건설합니다.
저희들 지난 12월 SF 역사 탐방 갔을때 아주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유니언 스쿼어 광장에 잇는거 보셨죠. 그것도 노턴이 매년 어린이들을 위해 12월 1일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라 했던걸실제 하다보니 전통이 되어 내려오는겁니다 ㅎ
노턴은 1880년 지금의 Grant Ave 와 California 코너 (지난 12월 탐방때 이코너 저희들 거쳐 갔습니다) 에서 항상처럼 황제복장으로 뇌졸증으로 쓰러져 사망합니다.
어쩌면 정신이 오락가락한게 아니라 혹시 자신의 인기를 만들고 이용할줄 아는 천재일지도 모르겟습니다
아님 Barbary Coast 라 불렸던 골드러쉬의 1850년대 불법 무법 천지의 세상에서 사람들 스스로를 위안할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 했을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됐건 당시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고 그의 장레식은 그당시 인구로 3만명이나 운집했고
떠난 자칭 황제는 140년이 지난 오늘날도 샌프란시스코 곳곳에 문화와 기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혼자 재미있어 떠들다 보니 글이 엄청 길어 졌네요.. 어휴... 민페가 안되었길
허본좌보다 형님이 바로 우리 옆에서 살다 가셨군요. 다음 편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