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2012.03.14 19:43
음... 원어로는 어떻게 되어 있나 보았더니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조지 버나드 쇼가 그리 "우물쭈물"하면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묘비명이다."라는 시각을 조지 버나드 쇼에게 치부(置簿)하기엔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원문을 번역하자면 "이렇게 오래 머물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정도가 되는데요.  94세까지 (1856년 7월 26일 – 1950년 11월 2일) 살았던 그의 수명과 아래에 적은 쇼의 평생의 성취들을 감안할 때, 이 묘비명 (epitaph) 의 의도는 "오래 천수를 누렸고, 당연히 모두에게 오는 것이 내게도 왔습니다." 정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이런 지루한 진실들과는 별도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라는 말은 제 양심에 자상(刺傷)을 남기는 좋은 말씀입니다. ^^

아일랜드 태생의 조지 버나드 쇼는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나왔을 뿐이나, 사환으로 일하면서 음악과 그림을 배웠으며 소설도 썼다. 쇼의 흥미는 문학, 음악, 그래픽 아트 등에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크게 감동받아 마르크스 연구를 했고 평생 사회주의를 신봉했다. 1885년부터 1898년까지 13년 동안 쇼는 신문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여 주로 음악·미술·연극·문학의 시평(時評)을 했다. 모두가 영국 비평계의 최고 수준을 과시하는 것이며, 특히 1895년에 시작되는 <새터데이 레뷔>에서의 연극비평은 오늘날 모범이 될 만한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평생 5편의 소설, 다수의 단편, 63 편의 희곡을 썼고, 일부는 영화로 각색하였다. 사회주의와 유제닉스 (인종개량주의) 를 접목시키고자 하였다. 1925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 그러나 상금은 스웨덴의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1938년에는 오스카상을 수상함으로서 노벨상과 오스카상을 둘 다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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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는 비가 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