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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1일 후기 Wrights Lake (Lake Tahoe 지역)

by 계수나무 posted Sep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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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

아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가 깨워줄 사람도 없고 알람 시계조차 없어서 전날 미리 부탁했던 터다.  1 집결지인 아싸님댁에  도착했더니 조은님과 아리송님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계신다.  간단히 점검을 하고 드디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발.  몇번이고 떠나도 역시 그때마다 마음은 항상 공중에 떠서 차보다 앞서 달려 나간다. 시간 가는줄 모르는게 카풀의 묘미.   어느새 새크라멘토가 가까와 오면서 슬슬 모닝 커피 생각이 난다.  아싸님과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살겸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아싸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Lee Sandwich” 가기위해 50번을 빠져 나왔는데비게이션이 다시 50 타고 오던길로 3마일 돌아가란다. 아싸님이 바로 출구를 지나자마자 네비게이션을 눌렀나보다.  그까이꺼 3마일.  돌아갔다. 그런데 그집 문이 닫히고 불이 꺼져 있네.  아싸님이 분명히 모든 체인점이 6 문을 연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집 망해서 아예 문닫았다.  우째 아침부터 꼬이는 기분일세.  아쉬운데로 근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고 다시 고고.  
여기가 축지법 쓰는 돌님 가계가 있는 동네네,

동영상에 나온 손녀가 너무 예쁘네, 스마트폰 페밀리 플랜이 얼마네, 안빼면 닥터가 약먹인다고 그랬네 등등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드디어 산자락에 들어서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걱정이 슬슬 머리를 내민다.  지난밤에 캠핑한 횐님들은 무사히 지내셨을까, 산행은 지장 없이 진행 될수 있을까?

그런데 산님 주유소가 가까워오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다.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인간의 우매함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주유소에 들어서니 산님과 이미 도착한 횐님들이 반긴다. 산님이 제공하는 커피를 한잔들 마시고는 3 목적지로 출발하기전에 산님이 비옷을 가져오지 않은 모든 횐님에게 비옷을 내주신다. 

내옷은 방수가 되니까 괜찮아요.”하는 횐님들에게도 억지로 쥐어주시는데, 누가 알았으랴 비옷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캠핑장에 모여 인원 점검을 마친후 우선 모두 같이 힘든 코스로 보기로 하고 드디어 Grouse Lake, Hemlock Lake 그리고 Smith Lake으로 힘찬 발걸음을 디뎠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미 여러번 우중 산행을 경험한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비는 바람과 함께 세차게 내리면서 온몸을 적신다.  지나가겠거니 하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산님이 주신 우비를 꺼내 입었다. 판초를 걸치고 씩씩하게 걷는 우리 그룹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황야의 무법자 같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차거워지고 길은 비에 젖어 미끄럽다.  손가락이 점점 차거워진다. Grouse Lake 도착하니 안개에 덮힌 호수는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이때쯤 손은 이미 굳어져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바지 밑단은 모두 젖어 물이 흥건하다.  다음 목적지인 Hemlock Lake 도착해서 아지랑님의 자세한 설명에 감탄도 잠시, 마지막 목적지인 Smith Lake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산님은 산을 아래 위로 몇번씩이나 오가며 횐님들의 안전을 점검하느라 판초도 걸치지 않은 온몸이 비에 젖었다.  트레일 길엔 빗물이 여기 저기 고이며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비바람 몰아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때는 주위의 경관을 제대로 경황조차 없다.  안개와 쏟아지는 비에 시야조차 흐릿하다.  비는 이제 싸리눈과 섞여 내린다.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시 안개 때문에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서쪽길님의 빗속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꽁꽁 얼어 제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손을 호수에 담그니 호수물이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너무 물이 맑아 두루님은 물이 있는지도 모르고 물가로 다가가다가 신발이 빠져 깜짝놀라 뒤로 물러 나신다.

이런,  와중에 산님은 웃통을 벗고 목물을 하시는게 아닌가.  온몸이 후들거리고 손이 얼어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데 목물이라니.  대다나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지 호수 건너편 아래 부분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좀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도 이미 사태는 예사롭지 않다. 무사히 내려가야 한다.

돌아 내려오는 길은 왜그리 가파른지.  갑자기 번쩍! 하더니 머리위에서 천둥이 몰아친다.  놀래라.    비는 우박으로 바뀌어 판쵸위를 두드리고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내려오는 가파른 돌길위에 쌓여 잠시만 방심해도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 우리 산행 횐님들의 놀라운 저력.  특히 여자 횐님들은 누구하나 힘들다 하지 않고 아무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고 얼음 깔린 가파른 바위길을 묵묵히 내려 오신다.  이미 바지는 내의까지 모두 젖었고, 비는 바지를 적시 양말을 통해 신발 안으로 흘러내려 발도 젖었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몸에 열이 날만도 하련만 아래도리는 추위에 저절로 흐들거리는데 차마 내색조차 할수 없는 분위기다. 문득 누군가 전에 한말이 생각난다.  비가 많이 올때는 비닐로 신발위와 양말위를 묶어주면 물이 안들어간다고 했다.  그때는 그저 그거 좋은 생각이다라고만 했다.  사돈 남말하는 정도로만 들었다.  당해 봐야 안다는게 서글프다.

어깨를 잔뜩 오그리고 덜덜 떨면서 걸었더니 어깨부분이 뻐근하다.  배는 고프지만 춥고 우박 쏟아지는 산에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다들 가지고온 스낵으로 허기만 대충 달래고 산을 내려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우박은 점점 알갱이가 굵어져 길에 두텁게 쌓이고 눈녹은 물이 길을 점령해서 내려오는 길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리고 보니 올라가고 내려오는 동안에 물을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올라가는 중간부터 소변이 마려웠지만 손가락이 얼고 비가 오는 통에 계속 미루어왔는데 참는것도 한계에 왔다.  스낵 먹는 틈을 이용해 아싸님과 함께 산 아래로 좀 내려가는데 여자 횐님 두분이 우리가 산을 내려가는줄로 알고 따라 오신다.  아니거든요.  제발 따라오지 마세요. 

손가락이 완전히 얼어서 지퍼 내리는데도 한참 걸렸다.

신발끈이 풀려 신발끈을 간신히 묶고 부리나케 뛰어서 쫒아가다 바위위에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얼른 일어나 앞뒤를 보니 아무도 없다.  이그 다행이네. 

손목까지 얼어있는 상태에서 양손으로 체중을 버티면서 바위를 짚었는데 워낙 감각이 없는 상태라 지금은 괜찮은것 같은데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 다다르자  앞서가던 산소리님이 제자리 뛰신다.  몹시 추우신 모양이다. 

파킹장이다. 여느때보다도 반갑다.  

먼저 내려간 뫼산님이 하필 화장실 바로 문앞에 주저 앉아 버너를 켜서 불을 쬐고 있다.  아니, 이런.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어떻게 남여 공용 화장실 바로 문앞에 앉아 있담. 그런데 뭔가 따끈한걸 마시고 있다. 갑자기 머리속이 하얗게 비어 온다.  있수?  부랴부랴 두루님에게서 컵을 빌려 아싸님과 한모금씩 교대로 마시는 라면 스프만 넣고 끓인 따끈한 그맛.  또한번 간사해졌다. 몇초전만 해도 뭐라 했더라?

산님께서 댁으로 모두 가자고 하신다. 온몸은 젖었고 신발속에 물이 차서 질퍽거린다. 이런 상황에서 모닥불로는 해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신거다. 살았다.

산님댁에 도착해서 들어가보니 아무도 없던 집이라 썰렁하다.  춥다.  급한대로 작은 스토브를 주셨는데 동행님과 스카이님이 총알같이 앞으로 다가가 껌처럼 붙었다. 그렇게 우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우박 쏟아지는 벼랑을 오르내리던 우리의 우상 횐님도 역시 사람이었구나. 황야의 무법자처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가 완전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돌아온 우리에게 산님은 발이 헐벗은 자들에게 따뜻한 양말을, 바지가 흠뻑 젖은자에게는 바지를 내어 주셨다.

산님의 골프용 바지를 입은 횐님은 분명 전생에 트로트 가수였을게다. 아님 지금부터라도 직업을 바꾸는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시던지.  빽구두만 신으면 딱이다.

정성을 다해 우려낸 닭육수가 상했다고 안타까워하던 아리송님은 절대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서도 맛볼수 없는 신비의 잡탕 닭고기 수제비를 내어 놓았다.

쓸데없는 멘트와 함께.  많이 만들었으니 의무적으로 두번반씩은 드셔야합니다.”

내가 두번째 먹으려고 갔더니 그많던 수제비가 어디가고 바닥에 토막 간신히 붙어있다. 오마이갓.  이럴줄 알았으면 서둘러 먹는건데

모찌롱님의 막걸리,  산님의 포도주,  서쪽길님의 나물 반찬, 한솔님의 북어포 무침, 아지랑님의 도다리등과 함께한 저녁 맛있게 먹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집으로 출발한 시간이 예정보다 빠른 오후 5.  아직 오락가락하는 비를 뒤로하고 앞으로도 경험해 보기 힘든 산행을 무사히 끝내게 된것을 자축하면서 돌아오는 길은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얼었던 몸이 풀려 노곤하지만 상쾌하다.  새크라멘트를 지나 80 도로를 따라 오는길에 갑자기 앞쪽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 있고 차들이 멈춰서기 시작한다.  차밀리는 시간이 아닌데.  처음에는 굵은 빗줄기가 그리고 이어서 우박이 쏟아지는데 지붕이 찌그러지는줄 알았다.

그렇게 10분쯤 지역을 지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어있다.  햇빛이 반사되어 오히려 동쪽하늘에 석양이 아름답다.

 

같이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하고 고마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