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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by 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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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23> 물 흐르듯 거침없이
 
 
모든 과정이 착오없이 물 흐르듯이 진행된 10일 간의 차박 로드 여행, 그 여행의 마지막 날에 차 안에서 우연히 류시화 시인의 페이스북 글을 보게 됐다. 시기적절하게도 그 글에는 이번 여행과 관련 내 심정을 대변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링크) 
 
"우리가 주기적으로 명상하고, 책을 읽고, 어딘가로 추구 여행을 떠나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영혼의 호흡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힘을 갖기 위한 것이다."
 
나 역시 이번 여행을 통해서 다시 돌아온 내 세계에서 변화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더 힘있게 살아갈 힘과 그런 일상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여 내 자신을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는 역량을 얻고 왔다고 믿는다.
 
이런 거창한 컨셉이 아니더라도, 소소하지만 긍정적인 체험들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우선, 차박 여행 경험이 쌓이면서 예전보다는 시간 활용 효율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차박을 하는 노하우도 더 세련되면서 이제는 웬만한 상황이나 장소에도 차박을 할 수 있는 기량과 요령이 늘어서 여행의 재미가 컸다. 조만간 직장에서 은퇴를 해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닐텐데, 효율적으로 장소를 찾고 이동하는  것,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 등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혼자 여행을 함에도 외로움을 거의 느낄 새가 없었다는 것도 전에 비해 여행의 깊이와 맛이 더 심화됐는 걸 의미한다. 
 
더불어, 이전 앞글에서 언급했었던 여섯 친구들의 유효함도 다시 한번 실증이 되었다. 특히, 위험할 수도 있는 장거리 운전 때마다의 몰입 훈련 체험을 통해, 이 친구들이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거듭 확인을 하였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서 생전 처음으로 완전하고 온전한 모양의 무지개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는 내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친구 하나가 더 늘어 전부 일곱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다. 마침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고 하니 이 스펙터클한 조화로 말미암아 엔돌핀이 넘치는 여행 마무리와 함께 새해를 맞는 나의 가슴을 희망으로 부풀게 만들었다.
 

무지개 1.jpg

(새해가 오기 하루 전, 여행 마자막날 로드에서 만난 온전한 형태의 스페턱클한 무지개 (이런 무지개는 생전 처음 봤다.)

물론, 이번 여행의 단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예전 로드트립에서도 그랬듯이 현장에서 여행 후기를 산악회 홈피에 올림으로써 마치 남들과 여행의 체험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일말의 스릴과 쾌감도 있었지만, 이는 또한 여행 자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었다. 소중한 밤 시간에 나와 대면하는 성찰의 시간 대신에 후기에 올릴 사진을 선별하고 정리한다고 시간을 많이 써버리는 결과도 낳았다. 이와 같은 남에게 보여주기 의식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 이번 여정에서 겪은 소소한 체험들을 몇 가지만 추가해 본다.
 
이번에 네개의 주를 거쳐갔지만, 주로 다닌 지역은 유타 주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 가 보기는 했으나 이번에 제대로 속살을 보고 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와 알라스카 다음으로 여기에 국립 공원이 많은 이유가 그 독특한 지형이 만들어내는 자연 환경 때문이다. 다섯개의 국립 공원이 있는데 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지난 번에 Zion과 Bryce Canyon, 이번에 Arches NP와 Canyonland를 카버를 했고 Capital Reeff NP는 계획을 세웠다가 Vermillion Cliff NM으로 대신했다. 이들은 주로 수백만년 전에 융기되거나 침식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암석들이 소위 콜로라도 고평원(Colorado Plateau)을 이루면서, 캐년, 메사(Mesa), 아치형 암석(Arches벽오름(Buttes) 등과 같은 여러 다양한 장관과 비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자연의 보고를 보면서 이 중 하나라도 한국에 있다면 그 지역은 관광 대박을 이루겠다는 상상도 해 봤다 (자세한 사진 후기는 앞글 댓글 참조, 링크). 

 

​​유타 주의 고속도로를 타는 것은 운전자들에게는 큰 특권이었다. 일단 경치가 주로 수려해서 지루한 감이 없었고, 거기 여러 고속도로들이 최고 속도가 80 마일이어서 90마일까지도 밟고 달릴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유타주는 대체적으로 도로들이 곧게 나있고, 교통량이 적어서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로드트립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도로들이 붐비지 않아서 로드 트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운전에서 오는 부담이 확 줄어들고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해 주었다. 
 

유타 고속도로 2.jpg

(Dead Horse Point로 가는 길에서, 앞에 보이는 산들은 La Sal, Abajo, and Henry Mountains.)

유타 고속도로 3.jpg

(7일차, Richfield를 지나 차박을 하기위해 Beaver라는 타운으로 가는길, 15번 고속도롤로 바꾸기전 70번 고속도로에서)
 
유타와 아리조나의 기름 가격을 보고 실감이 안 날 정도로 부러웠다. 캘리포니아 가격보다 평균 1 달러 이상이 더 쌌기 때문에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과 함께, 기름을 마음껏 넣고 다닐 수 있어서 로드 트립의 부담감이 확 줄었다. 어떻게 같은 하늘에 기름값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유타에서 마지막 방문지인 Arches NP와 Dead Horse Point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서 스쳐 지나간 Richfield라는 농촌 마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내 기억의 뇌리에 박혔다. 정상에 눈이 쌓인 높은 산들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 산줄기를 따라서 같이 길게 늘어진  농사 짓는 대평원의 대지와 함께 어우러진 아담하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집들, 그리고 그 평원을 따라 평행하게 놓여진 70번의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느끼는 심미감으로 인해 마치 딴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아마 중학교 때 영어교과서에서 유타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등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 더 눈길이 간 것 같기도 하다. 빨리 지나느라 전체 경치 사진을 못 찍었는데, 그게 가장 큰 후회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몰몬 이주의 초기부터 비옥한 땅이라 몰몬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온 아름다운 풍경의 농촌 마을이었던 것이다. 거기서 차박을 하려다가 어둡기 전에 1시간이 더 남아 더 남쪽으로 이동하여 Beaver라는 몰몬 교도들이 많이 사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차박을 했고 거기 사람들을 대해 보니 천상의 낙원처럼 다들 천사 같은 인심을 쏟아냈다 
 
이장님이 알려 준 Vermilion Cliffs NM은 거대한 붉은 암석의 산들이 거대한 평원을 양쪽으로 둘러 싸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말 장엄하기 그지 없었다. 내가 두번 째 차박지였던 Page, AZ에서 가까운 Glen Canyon안에 있는 Lone Rock 호수 혹은 강 모래연안은 참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진과 이에 대한 내용은 이전글 댓글 참조, 링크)
 
그리고 Antelop 캐년을 예약하지 않고 갔는데 표를 현장에서 사서 들어가서 볼 수 있었던 행운도 기억에 남는다. 마침 들어간 시간이 1시경이나 겨울 시간으로 빛이 잘 들어오는 시간이 당첨된 것도 큰 행운이었다. 이 오색찬란한 동굴은 빛이 동굴 천장의 빈틈으로 조금이라도 많이 들어와야 동굴 벽의 색들이 현란해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앞글 댓글 참조).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Monument Valley도 직접 가서 봐서 보람이 있었고 내 버킷 리스트에서 내릴 수 있게돼서 흡족했다. 특히, 서부 영화에서도 여러번 등장하는 The View에서 보는 그 멋있는 배경과 경치는 내 머리에 오랫동안 잔영을 남기게 했다. 
 

Monumenent valley 3.jpg

(The View에서 내가 찍은 Monument Valley의 대표적인 Buttes (절벽오름들), 서부 영화 "역마차"에도 등장하는 곳. 이에 대한 링크)

결론적으로, 켈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네 주를 망라하는 이번 차박 여행에서 내가 가 보지 못한 국립공원들을 접하고 그 광활한 땅을 운전해서 돌아다니고 왔다는 게 전체적인 그림이고 의의일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로 압축해서 이번 경험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새로운 곳을 찾아 쉼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그리고 전혀 밟아보지 않는 생소한 곳에서 대자연의 품에 안겨  좁지만 아늑한 내 차안에서 휴식과 수면을 취할 때마다, 생기로 또랑또랑하게 살아넘쳐 지치지 않고 놀이에 몰두하고 즐기는 어린아이로 변신하여 초인(?)의 경지를 누비다 왔다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전에 로드트립에서도 같은 심정이었지만, 6년이나 나이가 든 내 차에게 감사를 표한다. "내 차야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정말 잘 뛰어줬어. 그 많은 장애물과 끝없는 3천마일의 기나긴 길을 한 번의 불평과 탈이 없이 마냥 잘 달려 준 너. 참 너는 기특한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