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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by 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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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16> 별(別)얘기 아닌 "별" 이야기

 

때는 지난 주 금요일 밤 9시, 장소는 집에서 230마일(=370 km) 떨어지고, 해발 6천피트(=1900m) 이상 올라간 세코야 국립 공원(Sequoia National Park) 내의 어느 한 지점. 

차박을 같이 하기로 한 동료 산악인의 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세코야 나무로 뒤덮혀 있는 주변에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벌레 소리 외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다. 

싸늘해진 밤 공기와 함께 깊은 산 속에서만 느껴지는 청정한 기운과 정적감만이 감돈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삼라만상이 내 마음을 적신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운, 어지러울 정도의 수많은 별빛.

점점이 박힌 빛들이 나에게 쏟아진다. 나를 휘감는다. 나를 압도한다. 나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정신만이 성성해지며 부양한다. 

문명 속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더니, 왜 이렇게 유독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왔을 때 셀 수없이 많은 찬란한 별들이 눈에 잘 들어 오는 걸까? 도대체 저 별들을 헤아릴 수는 있는 것일까? 

측정 기술이 발달한 최근의 천문, 물리 과학 정보에 따르면 우리 은하계(the Milky Way)에 별들은 천억 개에서 사천억 개가 된다고 한다. 

헉! 천억개!! 말도 안 돼. 이 천억이라는 숫자를 셀 수는 있기나 한 건가? 일(1) 다음에 영(0)이 열한 개나 붙는 숫자이다. 그런데, 태양과 별은 다르지 않고 같은 별이라고 하니, 그 태양과 같은 별이 못해도 천억 개가 우리 은하계에 존재한다니 우리 머리로써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다인 줄 알아? 태양 같은 별이 천억 개인 것은 우리 지구가 속한 은하계에 한정된 얘기이고, 천억 개의 별이 있는 우리 은하계와 같은 다른 은하계가 모두 몇 개인 줄 알면 입을 다물지 못 할 것이다.

2007년까지의 데이타로는 이 우주에 은하가 천억 개였는데, 2015년 이후에 더 발달된 망원경으로 관측을 해 보니, 일조 개, 가장 최근 2021년 관측으로는 이조 개의 은하계(galaxy)가 관측이 됐단다. 그것도 관측할 수 없는 우주는 빼고 관측가능한 우주 내에서 2조 개의 별이 아니라 2조 개의 은하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럼, 은하계 하나 당 천억 개의 별이 있다고 치고 2조의 은하계와 천억 개의 별을 곱하면 20의 23승 (즉, 이백십경)의 엄~~청~~난 수의 별들이 이 우주에 존재하고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 은하계의 별의 숫자가 천억, 이런 천억의 별을 가진 은하계가 이조 개, 우주 전체에서 못해도 이백십경 개가 있단다. 

이런 규모면 이 대우주 속에서 태양은 새발의 피가 아니라, 먼지보다 못 한 존재이고, 그 보다 훨씬 작은 지구는 먼지 속의 점도 되지 못한 아주 미미한 존재인 것이다. 그 미미하고도 미미한 지구 속에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 헉~ 허! 그냥 숨이 막혀 버린다. 너무나 미미해서 내가 안 보인다. 내가 이 우주 속에서 사라진다 해도, 아니, 지구가 사라진다해도 이는 아무 변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무의한 것이다. 

이런 규모를 생각하면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우리는 겸허해지고 또 겸허해질 수 밖에 없다. 또 누구는 반대로 우리 존재가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고도 한다. 더 나아가, 신념으로든, 원한으로든 박터지게 사람을 죽이고 땅을 빼앗고 하면서 벌이는 전쟁도 참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하늘 별 5.jpg

(세코아 국립 공원 내, 씨에라 산에서 찍은 밤하늘)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별이 더 잘 보였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 나에게는 여름이면 마당 평상에 누워 매일 밤 별을 헤아리던 맑은 추억이 있다. 그런데, 전기가 발명돼서 밤을 밝히면서부터 우리는 밤도 잃어버리고 아련한 별의 추억도 잃어버렸다.

우리는 태양이 있어 밝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우주의 평균과 보통은 어두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만큼 우주는 대부분 어둠 속에 놓여있는 것이다. 하여, 우리가 늘 당연히 여기는 밝은 낮은 우주적 시각에서는 아주 희귀하고 비정상인 상태인 것이다. 하여, 이런 깨달음이 있으면 우리가 낮을 반기고 낮 시간을 소중히 잘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1억 5천만 킬로 떨어진 태양을  빼고 나면) 프록시마 센타우리( Proxima Centauri)라는 별로서, 지구에서 4.3 광년 떨어져 있다 한다. 우리가 이 별을 밤하늘에서 쳐다 볼 때는 우리는 그별의 4.3년 전의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즉, 빛의 속도로 소리가 도달한다 치더라고 여기 지구에서 ‘여보세요’라고 하면 그 별에서는  4년이 넘어서야 거기서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보는 태양빛은 8분 전의 과거의 빛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거기서는 지구의 2백5십만년 전의 지구를 보는 셈이다. 이 말은 거기서는 지구의 2백5십만년 전의 과거 역사가 이제야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써, 이 논리로 본다면, 지구의 과거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 우주 어디선가 생생히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참, 충격적인 일이다. 즉, 나의 과거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우주 어디에선가는 생생히 이제야 펼쳐지고 있다는 것인데, 내 과거는 우리 기억에서만 사라질 뿐 물리적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셈이다. 

이런 논리를 더 확장하면 우리가 느끼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의 흐름 상, 현재의 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이는 우리가 감각 기관에 의한 일시적 착각일 뿐이다. 즉, 내가 느끼는 이 순간은 저쪽 어느 우주 공간에서는 과거이기 때문이고, 저쪽의 과거가 여기서는 현재로 느끼는 착시가 있기 때문으로서 이런 안목은 아인쉬타인이 천명한 상대성 이론의 기본이 된다.

즉, 우리가 밤 하늘에 쳐다보는 그 수 많은 별들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별은 5년전에 모습이고 어떤 별은 수억년 전의 모습인데, 우리 눈에서는 현재라고 착각하면서 보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우주 전체 시공간에서는 우주의 전 역사를 하나도 사라짐 없이 서로들 바라 보고 있는 셈인데, 오감에 갇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갈릴레오의 말에 따르면) ‘어리석게도’ 현재 이 순간이라고 착각하면서 보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어둠과 공간이 디폴트(default)이고 평균인셈이고 우주는 텅비어 있다. 이 순간도 우리는 우리 감각이 만들어 내는 환각과 환상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과 아집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생각과 신념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런 우리를 어느 별에서 바라보면 참 안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우주적 현실과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그리고  우리 존재에 대한 겸허함 혹은 그 반대로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자주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 볼 필요가 있다. 문명이 감춰버리는 그 밤하늘을, 우리 산악인들은 자주 산에서 접할 수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오늘도 산이 별들과 마주하라고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별(別)얘기아닌 위대한 별 이야기는다음에 To Be Continued..)

 
 
밤하늘 별 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