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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by 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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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칼 14> 짜라퉁은 다시 이렇게 웃겼다
<부제>: 꼰대에서 '초인'으로

 
꼰대마을 광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짜라퉁(Zarathung) 도사가 140년 만의 긴 침묵을 깨고 노고도(No-godot) 산에서 하산을 했다. 이전에도 홀연히 세상에 등장하여 3년 간 초인의 길을 설파한 후 어느날 안개처럼 잠적했다가 이제 1.5세기 만에 다시 이 마을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속박하고 지배했던 절대적 신이 오래전에 이미 몰락하여 의식이 자유로운 시대가 도래했건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들은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여기 저기 끌려다니는 허접한 쫀대의 삶을 살고 있구나!  초인은 온데 간데 없고 그야 말로 세상은 온통 꼰대쫀대들로 가득하도다!”  
 
“어, 초인은 뭐고 쫀대는 또 뭐여?”
“21세기에 뭔 도사? 웃겨!”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고자 마을 이장이 나섰다.
 
마을 이장: 선생님은 보아하니 도력이 보통은 아니신 것 같은데 어떤 연유로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까? 
 
짜라퉁 도사: 세상이 꼰대와 쫀대들로 넘쳐서 혼탁하기 그지없어 이들을 깨치러 왔노라!
 
마을 이장: 그렇지 않아도 꼰대에 대해서는 여기 저기에서 배워서 잘 이해하고 있는데 쫀대는 무엇입니까?  (꼰대 글 1, 꼰대 글 2)
 
짜라퉁 도사: 예나 지금이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바닷물에 이리 저리 떠밀려 사는 해파리의 삶을 사는 자들이로다. 종교와 관습이라는 무거운 속박의 짐을 아직도 지고 낙타와 같이 노예적 속성으로 순응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여전히 많나니, 이는 자신이 스스로 가치를 만드는 능동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만들어 놓은 가치 기준과 평가에 따라 살아가기 바쁜 자들이로다. 작금에 와서는 미디어와 넘치는 정보 그리고 기술의 발달의 물결을 타고 건성대충으로 얼룩진 깊이 없는 경박한 을 사는 신종 쫀대들도 가득하도다. 
 
범상치 않는 멘트에 마을 이장은 도사를 마을 회관으로 모시고 얘기를 더 들어 보기로 했다. 도사를 융성히 대접한 후에  마을 사람들을 모두 회관으로 모이게 했다.  
 
마을 이장: 자, 자, 이 분이 바로 정확히 140년 전에 ‘초인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들고 와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고 새로운 시대를 여셨던 짜라퉁 도사입니다. 현대에 우리가 누리는 새로운 사상, 철학과 예술 할 것 없이, 이 분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도사님이 긴 침묵 후에 세상에 다시 오셨는데, 마침 우리 마을로 먼저 오신 것은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 분은 도사님께 서슴치 않고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을 주민 1: 도사님께 감히 여쭙겠습니다. 지난 1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엄청난 기술의 발달과 부의 창출로 인류는 훨씬 물질적으로 유복해지고 생활도 편리해졌는데 어찌 인류의 삶을 폄훼하십니까? 
 
짜라퉁 도사: 140년 전 당시에는 나는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던 종교, 사상 그리고 인습을 타파하러 왔었노라. 요즘은 기술과 정보가 새로운 신이 되어 인간 정신의 깊이와 가치를 떨어뜨리고 게으르고 산만한 생활을 조장하여 또다른 속박을 낳고 있느니라. 편협한 정보의 편식은 넘쳐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은 점점 희미해지고 사람들은 갈수록 기술과 천박한 정보에 노예가 되어 피동적인 삶에 허우적되고 있지 않은가? 
 
마을 주민 2: 그렇다면 절대 신을 섬기며 그 섭리 안에서 살던 옛날보다 현대 우리 삶이 더 나아진 게 없다는 말씀입니까? 
 
짜라퉁 도사: 예전에는 미개함으로 어리석었다면 요즘은 깊이 없는 얄팍함으로 더 어리석어지고 있나니. 삶의 주체성은 오직 깊은 숙고와 통찰에 의한 독창적인 사고와 깊은 직관의 상상력이 동반될 때 나오는 법이거늘. 그대들은 얼마나 이런 주체성을 가지고 주인으로서 능동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가? 
 
마을 주민 2: 그럼, 어떻게 해야 도사님이 말씀하시는 초인적 삶을 다시 회복하겠습니까? 
 
짜라퉁 도사: 예나 마찬가지로 다시 말하노니, 아모르 파티(Amor Fati)!! 주어진 운명을 열렬히 사랑하라! 다시 말해, 너의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어라! 그러기 위해, 불행도 행복도 모두 초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남을 이길 게 아니라 나를 이겨야 하느니라. 그런 초긍정과 나를 이기는 길은 나를 몰락시키고 어린 아이처럼 매일 매일 새로이 태어나야 하느니, 아이처럼 호기심으로 가득찬 눈으로 깨어나서 온 마음으로 놀이를 하고 배우라. 매순간 살아있음을 각성하고 창조적 춤을 한 번도 추지 않는 날은 잃어버린 날로 쳐라. 
 
더 나아가, 자신을 깊이 이해하라. 초인은 고요함과 고독에서도 영감을 얻을 줄 알아야 하나니, 시간을 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독서와 명상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탐험하라. 그 힘으로 자신의 욕망과 가치를 재평가 하라. 오직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사회적 압력에 영향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생각을 갖고 자신의 세운 가치로 행동할 수 있나니. 그게 주체성을 가진 초인의 초석이니, 이게 내가 과거에 주창했던 초인 1.0의 길이이니라. 
 
마을 주민 3: 그렇다면 초인 2.0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짜라퉁 도사: 세상에 순응하고 살아남는 생존의 길만을 쫓아가는 것은 바로 쫀대의 길이요, 세상을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삶을 바꿔나가는 창조적 길을 가는 것은 초인의 길이니라. 새로운 초인의 모형인, 초인 2.0는 이와 같이 쫀대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로서 이를 위해서는 ‘들은 풍월’의 얄팍한 지식으로 살지 말고 진심과 절박함을 가지고 모든 지식과 정보를 의심하고 그 깊이에 뛰어들어 탐구하라. 그리고 거기서 자기만의 통찰을 얻어라. 
 
그러니, 명심하라. 정보와 기술은 양날의 칼이라는 걸. 잘못 사용하면 산만한 게으름과 얄팍한 건성의 삶을 낳고, 그 얄팍함이 현대판 노예의 삶을 부추긴다는 것을. 이와 반대로 이들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영혼을 더 풍요롭게하고 성장을 도와줄 수도 있나니. 초인 2.0는 이런 정보와 기술을 이용하여 치열하게 몰입하고 집중하여 깊이를 얻고 거기서 지혜의 안목과 자유함을 얻는 자이니, 이런 새로운 초인의 여정만이 삶의 깊이와 풍요로움, 그리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로다. 
 
마을 이장: 도사님, 초인 1.0와 새로운 버전의 초인 2.0 등의 많은 좋으신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이제 저희들 경청의 하드웨어 능력에도 한계가 오고 있으니 마무리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짜라퉁 도사: 명심하라. 습관적인 일상의 삶에 너무 안주하지 말고 밧줄타기 하는 광대처럼 균형을 잡고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야 하느니라. 열쇠는 무엇을 하든 거기에 따르는 위험과 도전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일 때  집중과 몰입이 생기리니. 그 힘으로 수반되는 기술과 지식을 깊이있게 연마하라. 그러면 그 위험이나 도전이 지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열쇠가 되리라. 결국, 이런 삶을 살 때만이 고착화 된 꼰대나 게으르고 얄팍한 쫀대의 졸렬한 삶을 극복하여 달인(達人, 링크)과 전인(全人), 그리고  더 나아가 초인(超人)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니라. 그러니 끊임없이 꼰대와 쫀대를 극복하고 전진하라. 
 
꼰대마을 주민들은 짜라퉁 도사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새로운 초인이 되기 위해 그 가르침들을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주체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는 여정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후기 노트: 이 글은 수 천년 동안 서양 사상의 근간이었던 이원론적 플라톤 사상과 기독교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20세기를 관통하는 현대 사상을 낳는데 초석이 됐던 니이체(Nietzsche)라는 사상가의 대표작, “짜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라는 책의 핵심 내용 (= ‘초인의 삶’이라는 주제)에 바탕을 두고 21세기 상황에 맞게 저의 생각을 추가하여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짜라퉁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와 우리말 은어 짝을 합쳐 만들어 본 합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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