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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미친 존재감

by 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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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미친 존재감

 

어느듯 인생의 청년기.중반기를 넘어선 우리들의 나이를 보면 연로한 부모님이 계시거나 아님 삶의 이치에 따라 떠나가신 경우도 많을거다,

 

지금 코로나라는 우리 일생에 겪어보지 못한 경험으로 격변의 세대에 살고 있는거처럼 보이지만 인생은 언제나 도전과 격변의 연속이다.

우리와 비교하면 굴곡진 한국 근대사의 한 가운데서 온몸으로 한평생의 삶을 지탱하신 우리 부모세대와 비교해보면 그래도 우리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짐작해본다.

 

그중에도 특히 엄마 또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우리 부모세대의 가부장적인 사회상, 대부분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도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느라  더 힘들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왔을거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제일먼저 배우고 발음하는 음 ~  마~, 라는 소리가 맘~, 엄마~  이듯이 거의 모든 언어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어머니라는 단어의 존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애뜻하고 중요한 단어가 아닐지 싶다.

 

나는 오늘 내 개인적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나의 어머니도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굴곡되고 힘들었던 한국의 근대사 속에서 욕심도 많고 억척스럽게 온몸으로 삶을 지탱해오신 분이셨다.

 

어머니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 상황속에서 먹고 살길을 찿아 일본으로 건너가신 외할아버님의 결정으로 일본에서 태어 나셨다. 언제인가 내가 어렸을적에 엄마는 어렸을때 인생의 꿈이 뭐였냐하는 질문을 해본적이 있다.

 

돌아온 대답은 이놈아 그놈의 B-52인가 뭔가 하는 큰 뱅기 수십대가 밤마다 날아와 폭탄을 퍼부어 대는데 묵고 살라면 밤에 음식 구하러 다녀야지 무슨 꿈 타령이냐하셨던 말씀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다.

 

해방되고 한국으로 나오시니 또 한국 전쟁이 터져 한국의 모든 엄마들처럼 자식을 굶어죽지 않게 하기위해 또 고달픈 인생을 사신게 우리 모두의 엄마들 모습일거다.

 

우스개 소리지만 부모님이 세크라멘토에서 한동안 두분만 사실때 찿아가 필요한게 무어냐 물어보면 제일 탐내 하셨던게 냉장고와 냉동고였다.

 

엄마하고 아부지만 두분만 사시는 집에 냉장고 두개에 상업용 냉동고까지 그라지에 하나 더 있는데 왜 또 냉동고가 필요하냐하고 물어보면

 

농사 지어 놓은거 버리기 아깝고 니 마누라가 못만들어 주는 니가 좋아하는거도 몇개 만들어 놓았는데  너희들 와서 가져갈려면 냉장고하고 냉동고가 더 있어야 한다는게  대답이었다.

 

아마 전쟁 상황과 모두들 끼니조차 어려웠던 시절의 삶을 연명하기 조차도  부족했던 음식의 기억이 큰 영향이 아닐지 짐작해본다.

 

그런데 갈때마다 한차 가득히 얻어오는 음식들은 냉동고에 얼려 보관한 것들 조차도 자주 못찿아 뵙고 해서  냉동고에 얼마나 꽉차게 우겨 넣어 두었던지 공기 순환이 안되 집에와서 보면 냉동음식도 먹기에는 조금 거시기 해서 반이상은 항상 버렸지만 그래도 자식들 주겠다고 보관해둔  음식들 로테이션은 시켜주고 새로운 소일거리를  준다는 위안은 있었다.

 

어머니는 억척스럽기도 했지만 욕심도 많은 분이셨다.

2차 세계대전 때의 공습과 한국전쟁도 겪었지만 그이후 내가 태어나고 자란  60~70년대의 한국 상황도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다섯 자식들 먹이고 학교 보내느라 아버님의 월급만으로는 안되 일찍이 포목점 사업에 뛰어 드셨다. 다섯 자식 키우며 장사 하며 억척스런 삶을 사시느라 내가 어릴때 기억하는 밥상에서의 기억은 우리가 남긴 음식과 반찬들은 어머니는 남기지 않고 세숫대야 비슷한 큰 그릇에 부어 비벼먹던 기억이 많다. 난 여자라는 사람들은 본래 세숫대야 가득 양 만큼의 음식을 먹고 소화해 내는 동물인줄 알았다.

 

근데 결혼후 마누라 음식 먹는양 보고 여자는 위대한 거가 아니라는걸 비로소 알았다. 여기서 위대한이라는 말은 단순히 위가 크다는 말이다.

 

그당시 내가 기억하는 그만한 양을 먹고도 소화시키고 스모선수 몸매가 안된거 보면 얼마나 많은 육체적 칼로리를 사용했는지 짐작이 간다. 아마 지금이면 철인 삼종 경기에 나가도 충분히 상위권 입상이 가능하리라 짐작된다.

 

행여나 밥상머리서 밥투정 반찬 투정이라도 하면 그래?? 묵지마 하며 바로 밥상을 엎어버리는 과격함도 있던 분이어서 나는 지금도 절대 밥투정 , 반찬 투정은 안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모친의 억측스러움 덕분에 비교적 주위또래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별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던거 갇다.

 

근데 사춘기를 거치는 나에게는 모친은 가끔 아주 나를 당황스럽게 하고 창피해 숨게 만드는 존재였다. 밥투정, 반찬 투정이라도 하면 밥상을 바로 엎어 버리는 카리스마(?) 가 있는분이었고 살던 집과 점포가 함께 있던  시장에서 대판 싸움 났다하면 우리 엄마다

 

상대가 남자냐, 여자냐 한명이냐 여러명이냐 와는 상관없다. 무조건 싸움났다하면 전쟁통에 쌀구하러 다닌건 맞는건지 아님 쌀은 못구하고 욕만 배우셨는지 싸움이 났다하면 모친을 못당하고 전부 혀를 내두르고 피하는 그런 존재였다.

 

신사임당은 아니더라도 온화한 미소와 뭔가 다소곳한 여인상이 이상형이던 사춘기 소년에게는 이혁재의 눈매를 가지고 싸움이 났다하면 세상에 듣도 보도못한 욕들이 싸움이 종료 될때까지  막힘없이 흘러 나오는거 보면 상당히 뛰어난 암기력과 백전 백승의 싸움의 기술을 가진분은 분명하지만 사춘기 소년인 나에게는 싸움이 날때마다 창피해서 숨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

 

승승장구 하던 모친의 사업도 80년대초 2차 오일 쇼크를 맞으며 부도가 난다.

할수 없이 모친의 결정으로 나머지 가족들 전부 데리고 미국으로 오기로 결정하신다.

 

역사적 굴곡으로 일본서 태어나 한국으로 해방후 나오신거라 일어 한국어는 하시는데 연세가 있어시다보니 영어를 포함한 3개 국어는 안되신다.

 

그나마 기본영어는 하고 보내준 돈으로 학교 다니며 차를 가지고 있던 장남인 나는 식구들이 먹을 장을 보러 가실땐 필수적으로 데려가야 하는 존재다.

 

당시 산호제 Saratoga Ave 에 럭키 슈퍼마켓이 있었다.

장을 보러간 그날은 모친이 내가 천엽을 좋아한다는걸 아셔서 나를 데리고 온김에 말이 안통해 물어보지 못한 천엽이 있는가 물어 보라 한다.

 

1980년대 당시엔 미국슈퍼마켓에 천엽이라는거는 볼수도 없었고 일하는 사람들도 무엇인지 몰랐고 나도 물론 천엽이 영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괸찮다해도 오늘은 결고 니가 좋아하는 천엽을 사서 만들어 주겠노라 한다.

 

갑자기 육류섹션에 일하는 직원에게 본인이 직접 묻기 시작한다. 몸짓, 발짓 모든게 동원되기 시작한다. 음메~ 에 엉덩이 뒤쪽도 손동작으로 가르키기 시작하고 한 10분을 넘게 본인이 표현 가능한 모든걸 동원해 천엽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내얼굴이 살짝 붉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숨지는 못하고 그냥 없는거 갇다며 포기하고 그만 가자고 말해본다.  그런데 육류부 직원 한명이 음메~ 는 알아듣고 무무~~ 이냐고 물어본다. 모친이 반색하며 맞다는 표정이다. 여러가지 소고기를 부위별로 보여준다.

천엽을 드디어 구할수 있다는  희망의 불빛을 본 모친이 엉덩이쪽으로 가는 손동작과 함께 천엽을 가르키는 몸동작의 설명이 다시 더 화려한 액션으로 시작된다.

 

여러명의 슈퍼마켓 직원들이 구경거리가 생긴모양인지 몰려든다. 지네들끼리 끽끽거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중한명이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놀리는건지 장난인지 이상한 몸짓을 해가며 모친과 몸동작 언어를 주고 받고 끽끽거리는 소리는 더 크진다.

 

비로소 이놈이 나를 도와주는게 아니고 놀리고 있어며 영어 못하는 노친네 데리고 장난치고 있다는걸 느끼신 모양이다.

 

미국와서 언어도 안통하고 사업의 큰실패도 있고 연세도 들고 하셔서 설마 옛날의 그 카리스마(??)가 여기서 다시 튀어 나올줄 몰랐다.

 

화려한 단어 조합과

마이크 없이도 다 들을수 있는 음정과

랩처럼 빠른 음률과 박자로 이전의 갈고 딲아 잊어먹지 않고 가지고 계신 욕이 시작 된다.

여기다 적나라 하게 옮겨 적을순 없고 대강 느낌만 전해보면,

 

“이런 도그 새끼, 니에미가 미역국.. 호로새끼씹장생… 눈깔사탕… 오징어 먹물… 쪽~ 사시미… 곱창… 줄넘기… 콱~ 쓰리 아가리를… 쓰리 쪽갈비… 요단강 건너… 이 세상 하직… 콱~ 아가리. 손목댕이..… 뒷짱구… 퍽~!!  

 

비록 한국어 영어 통역도 없고 말도 안통했지만 모인 사람들도 욕이라는걸 알아 듣기 시작했고 욕인거 갇은데 참 막힘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며 이 덩치도 별로 안큰 동양여자  노친네 진정 시키지 않으면 큰일 날거 갇다고 느낀 모양이다.

 

매니저 나타나고 어디서 구했는지 몸동작에서 꼬리로 이해 했는지 진열되어 있지도 않고 당시로는 구하기 힘든 대강 손봐진 소꼬리를   큰 봉지에 담아

모친에게 건네주며 달래고 아주 정중하게 몇번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날 나는 결코 숨지 않았다.

다만 얼굴만 홍당무가 되어 이사태를 최대한 빨리 수습하기 위해 모친 말리고 진정시키느라 모인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 슈퍼마켓에는 소꼬리라는게 없는건줄 알았는데 비록 천엽은 아니지만 소꼬리라는게 어디에선가 나타나 무료로 주는 경우도 있다는걸 이날 비로소 알았다.

 

 

그저께 이번사태로 나도 어려움이 좀있어 건물주측과 다시 리스 재협상을 부탁하는 전화 통화를 했다. 코로나 사태라는게 터질줄 몰랐고

가끔씩 발동하는 나의 자존심으로  작년 서로의 의견 불일치 나는일이 있어 나의 변호사와 그쪽 변호사간 한바탕 법적으로 대판 붙은 덕분인지 재협상이라는 나의 말에 

그쪽에는 손톱도 안들어간다.

 

전화기에 대고 오래전 어머님의 화려한 욕을 따라해 본다.

 

“이런 도그 새끼, 니가 뭔데 함부로, 니에미가 미역국.. 호로새끼씹장생… … 오징어 먹물… 쪽~ 사시미… 곱창… 나도 존심이… 콱~ 쓰리 아가리를… 쓰리 쪽갈비… 요단강 건너… 이 세상 하직… 콱~ 아가리. 손목댕이..…내가 가진건... 함부로 아가리를 !  

 

마누라와 집에 와있는 아들놈들이 놀라 나를 쳐다 본다. 

물론 저쪽에서 끊고 전화 통화가 종료된거 확인하고 난후 전화기에 대고 떠든 나혼자만의 욕이었다.

 

코로나 사테라는게 맘크게 먹어면 별어려움도 아닌데 대단한 일인냥 의기 소침해있는 나에게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멋있었다.

떠나신 어머니가 더이상 창피하지 않다.

 

재작년 떠나신 어머니가  불현듯 미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사태로 제일 갑갑하고 힘든 분들이 연로하신 부모님들 입니다. 혹시 아직 살아 계신다면 이럴때 일수록 자주 안부 드리고 연락하면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천엽이 Tripe 라는건 알았는데 정식 명칭은 Omasum Tripe 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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