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와유두리

by musim posted Aug 02, 2013 Views 3607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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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문 들고 주말 아침에 들르는 단골 다방이 있었다. 오늘따라 보였던 백인 영감님의 두툼한 신문지를 펼치고 입시 공부하듯이 정독하는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구석에는 한국분들이 새벽에 교회를 마치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간혹 들리는 이야기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다. 이곳은 옛날에 지어진 곳이라 크지 않은 실내와 고풍스럽게 지어진 분위기에 이끌려 오랫동안 이용을 해왔다. 우리도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가까이서 들리는 비교적 한국말의 딱딱한 말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이 나도 공공장소에서 말소리에 주의 해야겠다고 느꼈다. 호세란 이름은 한국의 오십 년대에 흔했던 남자이름의 영수, 영철 혹은 여자 이름의 순자, 미자 만큼이나 흔한 스페인이나 멕시코 사람들의 남자 이름일 것이다. 조금 후에 호세가 빗자루를 들고 맞은편에서부터 청소를 해오기 시작한다. 점점 가까이 오자 어떤 여자 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친다. 호세! Don't do it! 그러나 호세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계속 빗질을 한다.

 

번째 소리 질렀을 때야 표정과 감을 잡고 멈춘다. 얼마후 그들이 떠났고, 호세와 내가 눈이 마주쳤을 청소를 하라고 사인을 보냈다. 그는 먼지 나지 않게 빗질을 하며 나의 식탁에 왔을 우리는 다리를 들어 주었다. 그는 몸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빗질을 하며 기분이 좋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친근감을 보인다. 또한 젊었을 때라면 먼지가 난다고 불평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지금 나이값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유두리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세는 이곳에 근무한 얼마 되지 않았다. 영어라고는 전혀 했던 호세를 보면 예전에 자신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호세와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기에 국적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예전에는 언어와 국적이 다르다면 진정한 친구가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호세는 나의 어리석은 믿음을 지워 버렸고, 그의 바디랭귀지가 증명해 보였다. 부터는 만날 적마다 굿 모닝 하며 나의 어깨를 건디리기도 하였다. 그의 직업을 그가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그가 적어도 눈에는 행복해 보인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적어도 호세 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물질과 행복함 그리고 건강을 추구한다. 지금 이대로가 더없이 좋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삶은 없으며,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고 타인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하기는 쉽지가 않다. 특히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욱이 살펴야 일이며, 자기의 좋은 생각이 타인에게는 많은 격식과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유두리라는 말을 즐겨 쓰기는 하지만 일본어의 유도리가 변형되어 불리는 말이다. 딱히 순우리말에 맞는 어휘는 없는 같다. 가까운 뜻을 생각하자면 너그러운 아니면 융통성일 것이다. 가깝게는 가족간에서 부터 교회생활에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간혹 들렸던 그분 들의 말에 의하면 어느 목사님이 한국에서의 유명한 목사님의 글을 인용한다는 것에 구설수에 오른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교회는 넉넉함과 융통성 없는 삭막한 교회라는 느낌을 지울 없다. 좋은 설교란 혼자만의 생각과 지혜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교회에 오랫동안 사역하시는 목사님도 때에 따라서는 설교의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다른 분의 뜻있는 설교를 인용하는 것은 유두리 있는 것이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융통성 없이 살아왔던 삭막함을 역시 지울 없다. 남아 있는 인생살이에 유두리는 없을망정 타인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다.